성직자 신뢰도 끝없는 추락
중요한 일 상담 30% 불과해
성직자와 교계 지도자에 대한 미국인들의 신뢰도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다. AP 통신이 역대 최대 규모인 490만 달러를 지원한 연구의 일환으로 실시한 조사와 더불어 여론조사기관 갤럽의 조사까지 최근 각각 별도로 발표된 유사한 주제의 조사 결과가 모두 이 같은 추세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를 두고 각계에서 분석한 성직자에 대한 신뢰도 하락의 배경과 원인 등을 살펴본다.
신뢰도 바닥, 어느 정도인가?
AP통신과 시카고대학 여론조사센터(NORC) 공공문제연구소가 ‘미국사회에서 성직자들의 역할 및 개인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력’에 관해 공동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성직자와 교계 지도자들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미국인은 55%로 절반을 겨우 웃돌았다. 아주 큰 영향력이 있으며 신뢰할 대상이란 응답은 34%에 불과했다. 같은 조사에서 교사(84%), 의사(83%), 과학자(80%), 군인(75%)에 비해서도 턱없이 낮은 수준의 신뢰도다. 성직자보다 낮은 직업군은 변호사(42%), 사업가(40%) 등이다.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성직자와 상담을 한다는 미국인의 비율도 30%로 낮았다. 절반에 가까운 47%는 성직자가 자신의 삶에 관여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답했다. 조사는 5월17~20일 성인 1,137명을 대상으로 실시했으며 표본오차 범위는 ±4.1%다.
갤럽 조사도 44년새 32%P 뚝
갤럽 조사에서는 기성 종교에 대한 미국인의 신뢰도가 1975년 기록한 68%에서 수십 년간 하향세를 이어오다 올해는 36%까지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는 6월3~16일까지 15개의 조직화된 기관에 대한 미국인의 신뢰도를 평가한 것으로 교회와 기성 종교는 의료 시스템에 대한 신뢰도와 동일하게 6위에 오른 반면 군대(73%), 소상인(68%), 경찰(53%) 등이 월등히 높은 신뢰도로 1~3위를 차지했다. 이외 신문과 대기업(23%), 텔레비전 뉴스(18%)를 비롯해 연방의회(11%) 등 정부기관과 언론이 신뢰도 최하위권을 장악했다.
교회의 세속화와 세대의 변화
성직자와 종교기관에 대한 신뢰도 하락의 원인 중 하나로 세대의 변화가 꼽힌다.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지금은 모든 고민의 해답을 구글과 같은 검색 엔진에서 찾는 것이 익숙하기 때문에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성직자를 비롯한 주위에 조언을 구하던 예전과는 시대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교회의 세속화에 따른 기성 종교에 대한 미국인들의 높아진 반감도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성 종교의 틀에서 벗어나 특정 교단에 속하지 않은 무소속 종교인이 늘어나는 현상과 맥락을 같이 하는 부분이다. 실제로 자신을 무소속 교인이라고 밝힌 미국인은 2008년 22.2%에서 2018년 29.5%로 늘었고 전국의 22개주에서 무소속 기독교인이 두 자리 수로 증가했다.
영적 지도자 부재와 성추문 여파
무엇보다 가장 큰 신뢰도 하락의 원인은 수십 년간 이어진 교계 성범죄 파문이다. 가톨릭 성직자들의 성적인 아동학대와 방조 등 대규모 성범죄 스캔들은 이미 20년 이상 지속되는 있고 미남침례회도 최근 700여명의 성폭행 피해자가 드러난 대규모 사건으로 홍역을 치렀다. 연합감리교회는 동성애 허용 문제로 교단 분리의 위기를 맞고 있다.
교계 안팎에서는 시대를 이끌어갈 영적인 지도자 부재가 신뢰도 하락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입을 모은다. 풀러 신학교의 커트 프레드릭슨 부교수는 ‘교회는 소방서 같은 곳이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사라졌을 때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라며 ‘성직자들이 항상 겸손한 자세로 남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정은 기자>
미국 최대 개신교단인 미남침례회의 최근 연례총회는 성직자들의 대규모 성폭력 사건을 규탄하는 시위로 도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