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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인가, 자비인가… 호주 안락사 논쟁 재연

지역뉴스 | 기획·특집 | 2018-09-15 18:18:23

치매,안락사,호주,살인혐의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누가 스킨 케어

80대까지 자연보호 앞장섰던

92세의 식물화석학 권위자

요양소 입원 중 숨진 채 발견

치명적 약물 혼합이 사망 초래

이 지역은 “조력 죽음’ 불법화

 “고통 줄여줘”“살인행위” 팽팽

8순에 들어서도 메리 E. 화이트는 호주의 넓은 다우림 속에서 살며 활기 찬 생활을 계속했다. 그녀는 친구들에게 자서전을 쓸 것이라는 야심 찬 플랜도 털어놓았다. 집필 중인 다른 두 권의 저서도 마무리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예기치 않게 엄습한 치매는 화이트의 활기를 강탈해 버렸다. 황야 침식과 인구과잉 경고로 명성을 얻은 과학자인 그녀는 숲을 떠나 딸 등 가족들이 사는 가까이 작은 마을 분다눈의 너싱홈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녀는 사람들과의 소통능력을 잃어버렸고 방문객들도 알아보지 못했다. 

그리고 지난 8월 어느 저녁, 화이트는 숨진 채 발견되었다. 92세였다. 며칠 후 그녀의 딸은 어머니를 살인한 혐의로 체포됐다. 치매 어머니의 죽음과 딸의 살인혐의 체포는 화이트와 그녀의 가족들을 아는 모든 사람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작은 마을 분다눈의 주민들은 언제나 어머니를 세심하게 돌보며 미용실에 모시고 돌아가던 길 길 건너 카페에 들리곤 했던 그 딸을 기억했다. 많은 이웃들은 어떤 일이 일어났던 간에 그건 연민과 사랑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건 자비의 행위였을 것”이라고 화이트의 30여년 친구인 제니 골디는 말했다. “거기엔 어떤 악의도 연관되지 않았을 겁니다”

이번 케이스는 화이트의 친구들만 슬픔과 혼란에 빠지게 한 것이 아니다. 호주 전국에서 안락사(euthanasia)와 조력 죽음(assisted dying) 논쟁을 한층 더 가열시키고 있다. 최근 호주 의회가 20년 시행되어온 안락사 및 조력 죽음 금지법을 무효화시키는 법안을 고려하면서 안락사 논쟁은 이미 재연되고 있는 중이었다.

결국 법안은 부결되었지만 지난해 빅토리아 주 의회가 호주에선 처음으로 불치병을 앓거나 수명이 제한된 사람에 대한 치사량의 약물 구입을 허용하는 ‘조력 죽음’을 합법화시켰으며 다른 주들도 유사법안을 고려하고 있다. 그러나 시드니에서 두 시간 운전거리에 위치한 분다눈이 속해 있는 뉴 사우스 웨일즈 주는 지난해 조력 죽음 법안을 부결시켰다.

일부에선 화이트의 케이스를 이 논의가 계속되어야 하는 적절한 예로 간주한다. 

이미 케이스의 죽음은 사랑하는 사람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지켜보는 가족들, 노령과 질병이라는 ‘조종’에 대한 민감한 찬반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노인인구가 늘어나 중간나이가 56세로 올라간 분다눈에선 상당히 공감을 부르는 주제여서 일부 주민들은 이번 화이트 케이스를 보며 자신과 자신의 부모들의 관계를 생각한다. 

당국은 화이트의 가족들이 너싱홈에 안락사에 대해 문의했으며 화이트의 상태가 악화되면서 딸 바바라 엑커슬레이가 개입할 필요를 느꼈을 것으로 시사했다. 

“”어머니의 고통을 멈추게 한 것“이라고 이 타운 중심가에서 25년째 프리무라 카페를 운영해온 피터 지아나코는 말한다.

카페 손님 중 일부는 그 같은 딸의 행동은 정당화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지아나코는 현재 96세로 노쇠한 자신의 장모를 생각하면 “난 도저히 그렇게 못할 것”이라고 회의를 표한다.

‘분디’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분다눈은 인구 2,700명에 불과한 농촌 벽지다. 군데군데 말과 양떼들만 보일 뿐 광활한 황금빛 들판을 가로질러 구불대는 한적한 길 저 끝에 위치한 작은 마을로 마지막으로 전국적 관심을 모은 것은 10년 전 병물 판매 금지로 뉴스가 되었을 때였다.

어떤 종류의 강력범죄도 거의 일어난 적이 없었다. 더구나 살인이라니! “분디에서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고 평생을 이곳에서 살아 온 올리비아 코울은 온 마을을 뒤흔든 이번 화이트 케이스에 대해 말했다. “아무 일도, 어떤 범죄도 일어나지 않는 곳이예요”

경찰은 너싱홈에서 죽은 채 발견된 화이트가 ‘살해당한 것’은 8월5일이며 엑커리는 사흘 후인 8월8일 체포됐다고 발표했다. 이 지역신문은 ‘치명적 약물의 혼합’이 사망을 초래했다고 보도했다.

66세인 엑커리는 현재 보석금을 내고 풀려난 상태다.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은 변호사를 통해 일체의 언급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친구들에 의하면 두 모녀는 각별히 가까웠으며 무엇보다 과학에 대한 깊은 흥미를 공유했었다.

남아프리카에서 태어난 화이트는 케이프타운 대학에서 고식물학을 전공했으며 지질학자인 남편과 결혼 한 후 1955년 자녀들을 데리고 호주로 이주했다. 그녀는 식물 화석분야의 권위자로 명성을 날렸으며 자연보호에 앞장섰던 식물학자로 2003년 시드니에서 4시간 운전거리의 ‘폴스 포레스트’로 불리는 다우림 지역의 200에이커 숲을 매입해 그곳에서 거주해 왔다.

화이트가 죽기 1주일 전 엑커리의 집을 방문했던 화이트의 친구 골디는 온 집안에서 긴장감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미소도, 웃음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엑커리를 짓누르는 중압감을 공감하면서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 상태가 악화되었을 때 자신이 시달렸던 괴로움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살인인가, 자비인가… 호주 안락사 논쟁 재연
살인인가, 자비인가… 호주 안락사 논쟁 재연

▶지난 8월 초 치매에 걸린 과학자 메리 화이트가 너싱홈에서 치명적 약물로 인해 사망한 후 당국은 딸을 살인혐의로 체포했다.               <뉴욕타임스-브렛 돌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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