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조화롭고 순하다. 산은 높지만 위압적이지 않아 골짜기마다 정겨운 마을을 품었다. 산줄기를 에두르는 물길은 험하지 않아 한없이 편안한 풍경을 숨겨놓았다. 전남 중앙부에 자리잡은 화순(和順)의 모습이 그렇다. 따사로운 가을볕에 축축한 마음 한 자락 널어 말리기 좋은 곳이다.
‘천불천탑’ 중에 나를 닮은 부처 하나
운주사에 대한 예상은 처음부터 빗나갔다. 구름이 머무르는 사찰이니 높은 산중턱에 자리하겠거니 하는 생각은 틀렸다. 해발 200m, 화순 땅에서는 평지나 다름없다. 또 하나, 화순에서 가장 이름난 절임에도 입구에 번잡한 상가는커녕 식당 하나 없다. 주차장 끝자락에 허름한 시골 슈퍼 하나가 길손을 맞을 뿐이다.
‘영귀산운주사(靈龜山雲住寺)’라는 현판이 걸린 일주문을 통과해 절간으로 오르는 길은 거북도 힘들지 않을 정도로 순탄하다. 평탄한 길을 조금만 걸으면 운주사에서 가장 높은 9층 석탑을 만난다. 바로 옆 ‘연장바위’는 운주사의 창건 설화를 담고 있다. 하루 만에 1,000개의 불상과 탑을 완성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믿음으로 석공들이 온 힘을 다하고 있었는데, 일하기 싫어하는 한 동자가 닭 울음 소리를 내자 석공들이 날이 샌 줄 알고 연장을 두고 떠났다는 이야기를 간직한 바위다. 사찰 안내판은 조선시대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을 들어 실재로 석불과 석탑이 각각 1,000개씩 존재했던 것으로 홍보하지만, 현재는 석불 93구와 석탑 21기가 남아있다.
경내로 들어서면 높이 때문에 9층 석탑이 시선을 사로잡는데, 조금만 눈을 돌리면 사방에 크고 작은 석불이다. 사람 하나 편히 앉을 만한 비탈이나 바위 틈이면 어디든 불상이 자리잡았다. 크기도 10m 거구에서부터 수십 ㎝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불상의 형태는 애초에 정교한 조형미나 종교적 위엄과는 거리가 멀어 더욱 친근하다. 평면적이고 토속적인 얼굴, 투박한 돌기둥이 그대로 남은 신체, 어색하고 균형 잡히지 않은 손과 팔은 뭇 중생들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거기에 세월의 흔적까지 더해 신체의 일부가 뭉개지거나 떨어져 나간 ‘못난이 부처님’이 대부분이다.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발길을 옮기노라면 자신을 꼭 닮은 불상 하나는 만날 듯하다.
석탑도 파격적이긴 마찬가지다. 흔히 보는 사각 기단과 지붕에서 벗어난 원판 형태의 탑이 있는가 하면, 탑신과 기단에는 연꽃과 부처뿐만 아니라 엑스자(X), 마름모 등 기하학적 무늬를 가미했다. 3ㆍ5ㆍ7ㆍ9 등 다양한 높이의 석탑은 대체적으로 날렵하다. 이 모든 것이 고려시대 양식으로 추정되지만 전남대 박물관에서 실시한 4차례의 발굴조사에서도 정확한 창건연대와 조성배경을 확증하지 못해 운주사는 여전히 신비로움에 싸여 있다.
운주사의 본 모습을 제대로 느끼려면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 산자락으로 발품을 좀 팔아야 한다. 일주문에서 본당에 이르는 구간에서 보는 석탑과 석불은 일부에 불과하다. 다양한 모양의 불상과 불탑이 보물찾기 하듯 골짜기마다 들어 앉았기 때문이다. 넓은 지역에 불교 유적이 흩어져 있는 경주 남산의 축소판이라 해도 좋고, 자연을 품은 오래된 조각공원으로 봐도 무방하다.
우선 지장전 뒤편의 불사(佛事)바위에 오르면 사찰의 규모가 한눈에 파악된다. 운주사를 창건한 도선국사가 공사를 진두지휘했다는 설화가 전해지는 바위는 한 사람 너끈히 앉을 만큼 의자처럼 파여 있다. 부드러운 좌우 능선 사이에 푸근히 자리잡은 석탑군(群)은 아늑하면서도 기품이 넘치고, 절간 너머 들판엔 노랗게 가을이 익고 있어 마음이 넉넉해진다.
불사바위에서 내려와 꼭 올라야 할 곳은 와형석조여래불(臥形石造如來佛), 즉 와불이 자리한 대웅전 서편 언덕 꼭대기다. 오르막이 제법 가파르지만 건너편 산자락이 잘 보이는 너럭바위에는 어김없이 석탑이 우뚝 섰고, 그 바위 아래에는 태연하게 불상이 자리를 틀고 앉아 있어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곳 와불은 모로 누워 머리에 팔을 괴고 있는 일반적인 형태와 달리 두 불상이 나란히 하늘을 보고 누워 있다. 애초에 와불로 제작한 것이 아니라 조각을 마친 후 등판을 분리시켜 세우는 공사를 마무리하지 못한 탓이다. 불상이 일어서는 날 새 세상이 열릴 것이라는 기대는 미래에 대한 간절한 희망으로 남았다. 석공으로서는 안타깝기 그지 없는 일이겠지만, 그 덕에 후대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부처를 만나게 됐다. 보호 테두리를 둘러 바로 옆에 누울 수는 없지만 모든 잡념 내려놓고 처연히 앉아서 무작정 쉬고 싶은, 운주사에서 가장 오래도록 시간을 보내도 좋을 곳이다.
와불 산책을 마치고 일주문으로 되돌아 나오는 길에 오를 때는 보지 못한 작은 불상들이 정갈하게 나란히 자리잡은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몸매도 매끈하고 이목구비도 한결 또렷해 의아했는데, 매년 석가탄신일을 기해 추가하는 불상이란다. 운주사 골짜기의 천불천탑 전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다 못 본 매력은 ‘천불천탑 사진문화관’에서
운주사 들머리에 올해 초 ‘천불천탑 사진문화관’이 문을 열었다. 화순의 다양한 매력을 사진으로 보여주기 위한 공간이다. 이달 말까지는 개관 특별전으로 오랫동안 운주사의 모습을 기록해 온 오상조 광주대교수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두어 시간 둘러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천불천탑의 또 다른 모습을 작가의 눈을 통해 보여 준다. 빛의 방향과 음영에 따라 표정을 달리하는 부처의 얼굴, 계절마다 새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석탑과 석상 사진은 현장에서 놓친 감흥을 전달한다.
1층의 ‘카메라옵스큐라’는 사진문화관의 또 다른 자랑거리다. 전시실을 카메라 내부에 들어선 것처럼 꾸몄다. 캄캄한 어둠에 적응할 때쯤이면 실제 카메라렌즈를 통해 들어오는 건물 외부의 영상이 눈앞에 펼쳐지는 신비로운 체험 시설이다.
<화순=최흥수 기자>
불사바위에서 본 운주사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