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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머무는 능선 위… 실크로드 숨 쉬던 신화의 땅

미국뉴스 | 생활·문화 | 2025-09-12 12:02:04

코카서스 3국, 아제르바이잔·조지아·아르메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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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서스 3국-아제르바이잔·조지아·아르메니아

유럽의 끝자락이자 아시아의 관문. 카스피해와 흑해를 사이에 두른 험준한 코카서스 산맥 아래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아르메니아세 나라가 고즈넉하게 자리한다. 이름만 들어도 어딘가 낯설고 신비롭다. 구름이 능선 위에 걸터앉은 이 땅은 성경과 신화가 교차하고, 실크로드의 교역로가 숨 쉬던 곳이다.

 

노아의 방주가 멈춘 아라라트 산과 초기 기독교 성지인 코비랍 수도원.
노아의 방주가 멈춘 아라라트 산과 초기 기독교 성지인 코비랍 수도원.

 

 

■불과 바람의 나라, 아제르바이잔

여행의 첫 발걸음은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서 시작된다. 코카서스 3국 중 석유 덕분에 가장 번영한 나라로, ‘불의 나라’라는 별명답게 바쿠와 카스피해 연안에서는 고품질 원유가 풍부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는 이 석유를 노리고 코카서스를 침공했지만, 소련군의 저지로 계획은 무산되었다.

바람과 불이 만든 도시라 불리는 바쿠는 낮보다 밤이 더 화려하다. 불꽃 모양의 초고층 건물 ‘플레임 타워’가 어둠 속에서 활활 타오르듯 빛나고, 카스피해의 물결은 마치 유리 거울처럼 도시의 불빛을 비춘다.

구시가지 ‘이체리 세헤르’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보석 같은 공간이다. 골목마다 돌담이 이어지고, 오랜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 있다. 특히 12세기 요새 ‘메이든 타워’는 아제르바이잔의 상징이라 할만하다. 왕의 딸이 원치 않는 혼인을 피하려 몸을 던졌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탑 위에 서면 옛사람들의 숨결이 바람결에 실려오는 듯하다.

바쿠를 조금 벗어나면 고부스탄 암각화가 있다. 1만 2천 년 전의 선사인들이 남긴 사냥 장면, 춤추는 모습이 바위에 새겨져 있고 그 옆에서는 진흙이 뜨겁게 끓어오르는 진흙 화산도 만날 수 있다. 땅이 숨을 쉬는 광경 앞에서 여행자들은 대자연의 원시적인 힘을 실감하게 된다.

실크로드 교역의 중심지였던 쉐키에서는 칸사라이 궁전을 빼놓을 수 없다. 햇빛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할 때 궁전 벽면에 퍼지는 빛의 무늬는, 그 자체가 예술이다. 이곳의 전통시장과 카라반사라이는 옛 상인들의 분주한 발걸음을 지금도 들려주는 듯하다.

■와인의 고향, 신화의 땅 조지아

국경을 넘어 조지아에 들어서면 사뭇 풍경이 달라진다. 이 나라는 와인의 고향. 무려 8천 년 전부터 포도를 발효시켜 ‘크베브리 와인’을 만들었다고 한다. 흙으로 빚은 항아리를 땅에 묻어 숙성시키는 전통 방식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작은 마을에 들어서면 집집마다 포도주 항아리가 묻혀 있다고 하니, 조지아 사람들의 삶이 곧 와인이다.

해발 800미터 고지대에 자리한 성곽 마을 시그나기는 중세의 시간을 품은 듯 고요하다. 골목마다 수공예 카펫 가게와 와인 샵이 늘어서 있고, 느릿한 삶의 속도가 마음을 편안히 어루만진다. 마을 근교의 보드베 수도원에는 조지아에 기독교를 전파한 성녀 니노가 잠들어 있다.

조지아 최북단,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코카서스 산맥의 계곡 속으로 카즈베기 여행이 시작된다. 카즈베기 지역의 상징인 게르게티 트리니티 교회는 해발 2,017미터 언덕 위에 자리하며, 그 뒤로 장엄하게 솟은 카즈베기 산(5,047m)이 여행자를 맞이한다. 정상부는 두꺼운 빙하로 뒤덮여 ‘얼음산’이라 불리며, 전설에 따르면 그리스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전해 벌을 받았던 산으로 전해진다. 산 위를 나는 독수리 떼가 전설과 현실을 오가는 듯한 장관을 만들어낸다.

조지아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은 바로 미각이다. 전통 요리 중 단연 압권은 어린 양을 통째로 구워내는 베이비램 구이다. 숯불 위에서 천천히 익어가는 어린 양고기는 겉은 바삭하게, 속은 촉촉하게 구워져, 한 입 베어 물면 육즙과 향신료가 온몸에 퍼진다. 산과 바람, 눈 덮인 봉우리를 바라보며 나누는 이 맛은, 여행의 기억을 한층 깊고 풍성하게 만든다.

수도 트빌리시는 또 다른 매력을 준다. 좁은 골목엔 유황 온천의 김이 오르고, 예술가들의 아틀리에와 카페가 가득하다. 케이블카를 타고 나리칼라 요새에 오르면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한 손엔 검, 한 손엔 와인을 들고 서 있는 ‘조지아의 어머니’ 동상은 이 나라 사람들의 기개와 환대를 상징한다고 한다.

■노아의 전설이 잠든 땅, 아르메니아

마지막 여정은 아르메니아. 세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나라답게, 곳곳이 성지다. 수도 예레반에 들어서면 분홍빛 현무암 건물들이 도시 전체를 따뜻하게 물들인다.

내륙국가인 아르메니아에는 해발 2천 미터 고지대에 세반 호수가 있다. 여기 사람들은 이곳을 바다라고 부른다. 주변 경관이 참 아름다운데 특히 용암이 흐르다 물과 만나 급격히 굳어 생긴 지형에서는 쉽사리 눈을 뗄 수 없다. 주상절리를 따라 절벽을 오르면 그리스 신화의 신전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사원도 만날 수 있다.

아르메니아 여행의 압권은 단연 아라라트 산이다. 성경 창세기에 등장하는 노아의 방주가 멈췄다는 전설의 산이며, 아르메니아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집’으로 불리는 신성한 존재다. 코르비랍 수도원에서 아라라트 산을 바라보면, 그 장엄한 모습이 마치 신이 직접 내려다보는 듯한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이곳은 아르메니아 최초의 기독교 국가 수립의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며, 성 그레고리오스가 13년간 갇혀 있던 감옥이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케스케이드의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면 마테나다란 박물관에서 고대 문서들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게하르트 암굴 수도원, 가르니 신전, 에치미아진 대성당. 그 어디를 가더라도 ‘최초’와 ‘신비’라는 단어가 따라붙는다. 특히 에치미아진 대성당은 아르메니아 정교의 심장이다. 로마 병사가 예수님이 돌아가셨는지 확인하기 위해 옆구리를 찌른 롱기누스 창, 예수님께서 지고 가셨던 십자가 나무 일부를 넣어 만든 십자가, 노아의 방주에서 가져온 나무조각이 붙은 십자가 등 기독교사의 귀중한 유물을 보유하고 있다. 유물의 진위를 두고 논란이 있지만 아르메니아에서는 성물로 대우한다.

아르메니아의 식탁은 또 하나의 성지다. 전통 빵 라바쉬는 커다란 화덕 안에 붙여 구워내는데, 뜨거운 증기 속에서 금세 노릇노릇 익어 나온다. 고기와 허브, 치즈를 얹어 돌돌 말아 먹으면, 포도주와 어울려 더없이 훌륭한 한 끼가 된다.

코카서스 3국은 새로운 ‘유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적이지 않고 깨끗하며 조용하다. 어느 순간에는 노아의 발자국을, 또 다른 순간에는 프로메테우스의 그림자를 보게 되는, 가보지 않고서는 결코 알 수 없는 세상이다. 이 땅의 사람들, 음식, 풍경 역시 여행자들을 매료시키기 충분하다.

 

 

코카서스 산맥의 미봉을 병풍처럼 두른 해발 2천m 게르게티 트리니티 교회.
코카서스 산맥의 미봉을 병풍처럼 두른 해발 2천m 게르게티 트리니티 교회.

 

 

바쿠의 상징이자 불꽃 모양으로 빛나는 플레임 타워 전경.
바쿠의 상징이자 불꽃 모양으로 빛나는 플레임 타워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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