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에게 듣는 건강 상식
청력 안 좋은 노인 위험 증가
보청기 착용시 치매 위험 완화
‘귀가 잘 안 들리면 치매에 걸리기 쉽다는 게 사실인가요?’
진료를 하다 보면 어르신과 대화를 나누기 어렵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앓고 있는 질환이나 관련한 증상을 물어봐도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거나, 아예 대답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어르신들이 이렇게 행동하는 주된 이유는 귀가 어둡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 여파로 진료하는 의사들이 마스크를 쓰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입모양이 보이지 않게 되자, 의사가 말을 하고 있는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더욱 모르게 된 것입니다.
청력을 평가할 때 쓰는 단위에는 헤르츠(㎐)와 데시벨(㏈)이 있습니다. 헤르츠란 1초 동안에 음파가 몇 번 진동하는지를 나타내는 단위입니다. 헤르츠가 높을수록 높은 음으로 들립니다.
데시벨은 소리의 강도를 나타내는 단위로 데시벨이 높을수록 소리의 강도가 높습니다. 예를 들어 모기의 날갯짓 소리는 헤르츠는 높고 데시벨은 낮습니다. 기차나 오토바이, 전기톱 소리는 헤르츠는 낮고 데시벨은 높습니다.
그렇다면 귀가 어두운 것은 치매와 관련이 있을까요? 잘 듣지 못하면서 치매가 함께 있을 경우 듣는 능력이 회복되면 치매 증세도 나아질 수 있을까요?
미국에서 평균 59세 성인을 대상으로 청력과 인지기능 간의 관계를 조사한 결과, 청력이 감소할수록 인지기능 저하가 관찰됐습니다. 예를 들어 10데시벨 정도 청력이 감소하면 인지기능 평가점수가 낮아졌습니다. 65세 이상의 고령층을 25년 동안 추적 관찰한 결과에선 청력기능장애를 가졌을 경우 치매위험도가 18% 높았습니다.
영국에서도 진행한 비슷한 연구가 있습니다. 50세 이상의 성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청력소실은 인지기능 감소와 관련이 있었는데, 중등도 이상의 청력소실을 갖고 있으면서 청력보조기구를 사용하지 않은 이들은 청력소실이 없는 실험군보다 기억력이 유의하게 낮았습니다.
이제까지 청력 감소와 치매와의 관계를 연구한 논문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결과를 보면, 청력이 감소하면 인지기능 저하가 발생할 위험은 2배, 치매위험은 2.4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렇다고 낙담할 필요는 없습니다. 미국에서 50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18년 이상 추적 관찰한 결과를 보면, 보청기와 같은 청력보조기구를 사용한 경우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기억기능 감소가 유의하게 늦어졌기 때문입니다. 청력보조기구가 치매 위험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뜻입니다.
현재까지의 연구결과를 보면 귀가 어두워진 경우 치매 위험도가 높아진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보청기 등을 착용하면 치매 위험을 낮출 수 있으니, 만약 집안의 어르신이 청력에 문제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보청기 착용을 권하는 것이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박창범 강동경희대병원 심장혈관내과 교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