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의 가능성을 싹부터 짓눌러 버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인정하고 격려하는 대신 멸시하고 천대하고 무시하고 “너 같은 게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식의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과 마주 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럴 때 마다 좌절 하고 넘어지고 포기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기드온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조적인 절망 속에서 삶을 살던 비천한 농부에 불과 했습니다. 기드온은 자기 자신을 단순히 낮추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로 비천한 자이고 보잘것없는 자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주께서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하신 첫번째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나님은 기드온을 만나자 마자 그를 큰 용사라고 하셨습니다. 이 때 기드온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기드온은 어리둥절해 말문이 막혔을 것입니다. 자신을 제일 작은 자로 여기고 있던 그에게는 얼토당토 아니한 소리였습니다. 그러나 그 말은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의 현재를 보신 것이 아니라 기드온의 미래를 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때 평범한 농부도 큰 용사가 될 수 있습니다. 조각가인 미켈란젤로가 어느 날 아주 잘 생긴 돌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그는 그 돌을 보고서 미칠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는 소리 내어 웃으면서 외쳤습니다. “야. 다윗이 걸어 나온다. 다윗이 걷고 있어.”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얼마나 한심한 일입니까?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돌이 다듬어지고 깎여져서 다윗 상이 만들질 위대한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가능성의 안목입니다. 하나님은 이 가능성을 가지고 하잘것없는 기드온을 바라보고 선택하였습니다. 주께서 그와 함께 계시고 그를 사용하실 때 일어날 놀라운 미래를 보셨습니다.
성경의 다른 인물 가운데도 주께서 그 가능성을 보신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시몬 베드로 입니다. 베드로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는 정서적으로 지극히 불안정한 사람이었습니다. 아침과 저녁이 다르고 오늘과 내일이 다른 도무지 일관성이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믿기 어려운 사람. 그가 베드로 입니다. 주님을 위해 목숨이라도 내어 놓겠다고 했다가 상황이 불리해지면 쉽게 그분을 부인하기도 했던 사람입니다. 주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길 때 처음에는 발을 내놓지 않아 주께서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고 하니까 그럼 목욕을 시켜 달라고 부탁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찾아오신 주님의 첫 말씀이 무엇인지 기억하십니까?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여기서 중요한 말은 “장자”라는 말입니다. “게바”는 베드로의 아람어식 표현인데 뜻은 “반석”입니다. 이것은 그의 성격에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 표현입니까? 그러나 주님은 육중하고 안정감이 있는 반석. 이 반석 위에 주님의 교회를 세우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주님 손에 붙들려 그의 삶에 새로운 변화가 찾아 왔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그렇습니다. 주님의 손에 붙들림을 받게 되면 우리의 삶도 새롭게 변화가 일어 날 것입니다. 요즘 온 세계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다 어수선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우린 주님만 의지하고 그분 앞에 더욱더 겸손히 나아가면 그 어떤 질병도 물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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