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이규 레스토랑
김성희 부동산
첫광고

[수필] 내 삶의 축, 북극성을 찾아서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6-03-02 11:28:40

수필,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내 삶의 축, 북극성을 찾아서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지나온 길을 돌아보기 적절한 때는 언제일까.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짧아진 시점에 이르고 보니, 지나온 발자취를 한 번쯤 깊게 반추해보고 싶다. 그래서인지 요즘 들어 옛 생각에 혼자 미소 짓는 일이 잦다. 나이 듦의 징조겠으나, 다행히 갈피마다 튀어나오는 기억들이 대부분 고운 추억들이라 감사하다. 매 순간 치열했노라 자부할 순 없어도 떠오르는 장면마다 온기가 번지는 것을 보면, 나의 삶은 제법 행복한 궤적을 그려온 모양이다.

노인들과 생활하다 보면 삶의 여러 단면을 접한다. 평생 독신으로 산 할아버지는 결혼하지 않은 것을 일생의 후회로 꼽았고, 할머니들은 대개 자신의 의지대로 살지 못한 세월을 아쉬워한다. 신념을 위해서 혹은 가족을 위해 자신을 지워냈던 시절에 대한 뒤늦은 고백일 것이다. 조금 더 '나'를 위한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그분들의 탄식 속에서 나는 내 미래의 얼굴을 본다.

한때는 이해하기 힘든 노인의 모습도 있었다. 유독 입술을 굳게 닫고 매사에 날 선 반응을 보이던 한 할머니가 기억난다. 작은 도움도 싫다며 손사래를 치고 가시 돋친 말로 주변을 밀어내던 그분은 양로원에서 이른바 ‘괴팍한 노인’으로 통했다. 그러나 그 단단한 껍질 속에는 누구에게도 꺼내 놓지 못한 채 곪아버린 외로움과, 지키지 못한 자존심의 잔해들이 숨어 있었다. 그 세월의 굴곡을 짐작조차 못 했던 젊은 날의 나는 그저 그분을 피하기에 급급했다.

나이 들어 다시 생각해보면 그 날 선 말들은 누군가 자신을 알아봐 달라는, 혹은 더는 상처받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방어 기제였다. "오죽하면 저리 되었을까" 하는 연민이 가슴에 고인다. 뾰족한 성정 뒤에 가려진 앙상한 진심을 볼 수 있게 된 것, 그것은 나이가 내게 준 가장 값진 선물이다. 이제는 그런 괴팍함조차 인생의 고단함을 견뎌낸 훈장처럼 느껴져, 그 주름진 손을 가만히 맞잡고 싶은 마음이 든다.

사실 성공 가도만 달리는 삶은 어디에도 없다. 실수와 실패를 거듭하며 걷다 보니 어느덧 성공이라 부르는 지점에 와 있는 것이 인생의 본모습일 것이다. 겉모습은 어른이었으나 속은 솜털 보송한 햇병아리 같았던 젊은 날을 되돌아본다. 그때의 허물조차 애틋한 추억으로 떠오르는 것을 보니, 나의 인생 항로는 꽤 성공적이었다. 지난날을 되돌아볼 때 사실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그 시절'이 아니라, 그 시간 속에 반짝이며 존재했던 '나 자신'이다.

칠흑 같은 밤, 길 잃은 나그네가 방향을 잡을 때 가장 먼저 찾는 것은 북극성이다. 나는 그저 그 별이 다른 별보다 크고 밝기 때문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북극성은 지축 바로 위에서 제자리를 지키기에, 계절이 바뀌어도 별자리가 흐트러지지 않고 늘 북쪽을 가리키는 것이다. 다른 별들이 화려하게 밤하늘을 수놓으며 자리를 옮길 때도, 북극성은 묵묵히 그곳에 머물며 길 잃은 이의 눈동자가 되어준다.

육십이 넘어서야 비로소 북극성의 진의를 깨닫고 내 삶의 축을 되짚어보는 마음이 못내 부끄럽다. 그래도 나그네가 북극성을 지표 삼아 험한 산맥을 넘듯, 인생의 길에도 나만의 북극성이 있어야 했음을 이제는 알겠다. 타인이 세워둔 이정표만 쫓으며 방향을 구걸했던 무지함에 고개가 숙어진다. 하지만 부끄러움에만 머물기엔 남은 생의 볕이 아깝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신체적 쇠락만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눈이 깊어지는 과정이다. 이제라도 남이 정해준 방향이 아닌, 내 영혼의 지축 위에 나만의 북극성을 띄우고 싶다. 그것은 젊은 날의 욕망과는 다른 지혜다. 타인의 모난 마음까지 긍휼로 품어 안는 넉넉함, 그 본질적인 사랑이 남은 여정의 새로운 축이 되기를 소망한다.

인생은 늘 현재 진행형이기에 매 순간이 황금기여야 하겠지만, 노년이야말로 삶의 본질에 가장 가까워지는 시기가 아닐까. 꿈꾸던 이상과 노년이라는 현실이 교차하고, 비로소 욕망을 내려놓을 줄 아는 나이. 이 시기에 지나온 삶의 무게를 정직하게 인정할 수 있다면, 다가올 노년 또한 멋지게 갈무리할 수 있을 것이다. 나그네가 북극성을 지표 삼아 마침내 안식처를 찾아가듯, 나 또한 내 안의 별을 따라 나답게, 아름답게 늙어가고 싶다.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한인타운 동정〉 '한미장학재단 남부지부 장학생 모집'
〈한인타운 동정〉 '한미장학재단 남부지부 장학생 모집'

한미장학재단 남부지부 장학생 모집조지아, 앨라배마, 플로리다, 테네시, 사우스 캐롤라이나 대학에 재학중인 학부, 대학원생으로 6월 30일까지 신청 접수를 받는다. 온라인 www.k

[수필] 빈 잔으로는 누구의 갈증도 채울 수 없다
[수필] 빈 잔으로는 누구의 갈증도 채울 수 없다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도대체 왜 이래요?”점심시간, 정적을 깨는 날카로운 고함과 함께 접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직감적으로 강 할머니가 계신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 서브디비전 주택, 편리함 뒤에 숨은 규칙과 보험의 차이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 서브디비전 주택, 편리함 뒤에 숨은 규칙과 보험의 차이

최선호 보험전문인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처럼, 사람은 혼자보다 함께 살아갈 때 더 많은 편리함과 안전을 누리게 된다. 미국 주거 문화에서도 이러한 공동체 개념이 잘 드

군사용 해상 드론 기업 조지아 진출
군사용 해상 드론 기업 조지아 진출

블루 옵스, 발도스타에 생산시설 연내 100명 고용...향후 200명 군사용 해상 드론을 생산하는 유명 기업이 조지아에 진출한다. 조지아가 국방관련 산업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다는

귀넷 도서관, 소상공인 및 창업 지원 기금 확보
귀넷 도서관, 소상공인 및 창업 지원 기금 확보

연방기금 33만 달러 확보 귀넷 카운티 공공 도서관이 조지아주 전역의 소상공인 교육 프로그램을 위해 연방 지원금을 받는 5개 도서관 중 하나로 선정됐다.존 오소프(Jon Ossof

“ICE에 시 자원 지원 절대 안돼”
“ICE에 시 자원 지원 절대 안돼”

애틀랜타 시의회 결의안 채택ICE 활동 관련 첫 공식 입장  애틀랜타 시의회가 연방이민세관단속국(ICE) 활동을 제한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의결했다. 실질적 효과와는 상관없이 도널드

실종 동생 집 몰래 판 캅 남성 ‘쇠고랑’
실종 동생 집 몰래 판 캅 남성 ‘쇠고랑’

닮은 외모에 운전면허증 이용 실종된 한 남성의 집이 형에 의해 매각돼 경찰이 신분도용 사기 및 주택담보 사기 사건으로 수사에 착수했다.21일 WSV-TV 보도에 따르면 캅 카운티에

조지아 대법관 선거, 낙태 이슈로 진영 대결
조지아 대법관 선거, 낙태 이슈로 진영 대결

내달 9일 2석 선거 앞두고 낙태 찬∙반단체들 지지선언 무당파 선거로 치러지는 조지아 대법관 선거가 낙태 이슈를 중심으로 보수와 진보 진영간 대결로 변질되고 있다.조지아 대법원은

조지아 ACA〈오바마케어〉가입자 10명 중 4명 포기
조지아 ACA〈오바마케어〉가입자 10명 중 4명 포기

1년 새 150만명→ 97만명연방 보조금 종료가 주요인의료계 “상당수 무보험 전락” 조지아의 연방 건강보험개혁법(ACA) 일명 오바마 케어 가입자 규모가 급감했다. 이에 따라 무보

옥타 애틀랜타, MODEX 2026 방문
옥타 애틀랜타, MODEX 2026 방문

북미 최대 물류 전시회AI·로봇 기술 동향 점검 세계한인경제무역협회(월드옥타) 애틀랜타 지회(지회장 썬박)가 북미 최대 물류·공급망 산업 전시회인 ‘MODEX 2026’을 찾아 스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