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는 성공한 ‘정보기술(IT) 오타쿠’의 표상이다. 10세 즈음부터 프로그래밍을 시작해 하버드대를 중퇴하고 창업 전선에 뛰어들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장악한 청년 재벌이라는 화려한 수식어 뒤에는 ‘컴퓨터만 아는 괴짜(nerd·너드)’ 이미지가 따라붙는다.
소심한 너드 같던 저커버그가 최근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대담 도중 욕설을 내뱉어 화제가 됐다. 상대는 애플이다. “솔직히 다음 시대(인공지능·AI)에서는 엿이나 먹었으면 좋겠다”는 그의 말은 농담조였고 황 CEO를 비롯한 청중이 웃음을 터뜨렸지만 “경쟁 플랫폼을 통해 사업하는 게 쉽지 않다”는 말에는 가시가 있었다.
저커버그의 분노는 애플이 대표하는 ‘폐쇄형 생태계’를 향한다. 개발사가 프로그램 설계도인 ‘소스’를 공개하지 않고 앱 유통망을 독점해 통행세를 받는 구조에 질렸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메타는 생성형 AI 라마 시리즈로 오픈소스 AI 진영 맹주를 자처하고 있다. 저커버그가 7월 말 라마 3.1 출시 당시 공개한 편지에 그의 뜻이 함축됐다.
그는 오픈소스 AI의 장점을 나열하며 “(애플의) 임의적 규칙과 혁신 차단, 개발자에게 부과하는 통행세 등 제한이 없다면 분명히 훨씬 더 나은 서비스를 구축할 수 있었다”며 “경쟁자의 폐쇄된 생태계에 갇히지 않아야 한다”고 일갈했다. 그는 “구글도 애플의 폐쇄형 생태계를 따라가고 있다”며 구글의 변절까지 우려했다.
개방적인 안드로이드 생태계를 이끌고 트랜스포머 구조를 공개해 생성형 AI 시대의 문을 연 구글은 폐쇄형 AI로 오픈AI와 경쟁 중이다. 구글의 태도 변화와 함께 반독점 규제·소송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저커버그의 지적은 의미심장하다.
메타는 이익을 추구하는 사기업이며 저커버그 역시 사업가다. 오픈소스 AI가 ‘자선사업’은 아니다. 이미 폐쇄형 AI가 선점한 시장에서 판을 뒤집기 위한 자구책에 가깝다. 그럼에도 “컴퓨터 초창기에는 오픈소스인 리눅스가 유닉스와의 경쟁에서 승리했고 윈도도 오픈소스는 아니었지만 개방형 생태계로 PC 시장을 장악했다”며 “개방성, 수정 가능성, 비용 효율성 등에서 오픈소스가 세상에 더 이롭다”는 저커버그의 주장에서는 자유롭고 개방적이었던 개발 환경에 대한 ‘그리움’이 읽힌다.
어느새 빅테크 최고경영진은 숫자 놀음에만 능한 ‘사업가’들로 채워지고 있다.
팀 쿡 애플 CEO는 운영 관리 전문가다. 순다 피차이 구글 CEO 또한 컨설팅펌 출신이다. 샘 올트먼 오픈AI CEO는 벤처캐피털(VC) 투자자로 이름 높다. 미국 매그니피센트 세븐(M7) 중 개발자·엔지니어가 이끄는 기업은 사티아 나델라 CEO의 마이크로소프트(MS)와 젠슨 황의 엔비디아 정도다. 나델라 취임 전 오픈소스 진영에 ‘악의 제국’으로까지 불렸던 MS는 어느새 가장 오픈소스 친화적인 기업이 됐다. 결과는 글로벌 시총 1위 복귀라는 성적표로 드러난다.
개방성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수정 가능성은 곧 보안 위협을 동반한다. 최근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딥러닝의 아버지’ 요슈아 벤지오 몬트리올대 교수 또한 오픈소스 AI가 ‘나쁜 손’에 들어가 악용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그렇다면 폐쇄형 AI·플랫폼 제작사는 ‘선한 손’일까. 독점적 지배력을 휘두르는 기업이 과연 선한 의도를 지닐까.
실리콘밸리의 생명력은 영원한 패권 기업이 없다는 데서 온다. 자본과 인프라가 부족한 스타트업들은 개방형 생태계에서 기회를 잡는다. ‘AI 언더독’인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현재 미국 외에 초거대 AI 개발이 가능한 국가는 없다. 개방형 생태계를 촉구하는 저커버그의 주장에 한 표 던지는 이유다.
<윤민혁 서울경제 실리콘밸리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