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이규 레스토랑
첫광고
김성희 부동산

[수필] 내 삶의 축, 북극성을 찾아서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6-03-02 11:28:40

수필,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내 삶의 축, 북극성을 찾아서

권순상 노흥성 부동산 470-218-6136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지나온 길을 돌아보기 적절한 때는 언제일까.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짧아진 시점에 이르고 보니, 지나온 발자취를 한 번쯤 깊게 반추해보고 싶다. 그래서인지 요즘 들어 옛 생각에 혼자 미소 짓는 일이 잦다. 나이 듦의 징조겠으나, 다행히 갈피마다 튀어나오는 기억들이 대부분 고운 추억들이라 감사하다. 매 순간 치열했노라 자부할 순 없어도 떠오르는 장면마다 온기가 번지는 것을 보면, 나의 삶은 제법 행복한 궤적을 그려온 모양이다.

노인들과 생활하다 보면 삶의 여러 단면을 접한다. 평생 독신으로 산 할아버지는 결혼하지 않은 것을 일생의 후회로 꼽았고, 할머니들은 대개 자신의 의지대로 살지 못한 세월을 아쉬워한다. 신념을 위해서 혹은 가족을 위해 자신을 지워냈던 시절에 대한 뒤늦은 고백일 것이다. 조금 더 '나'를 위한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그분들의 탄식 속에서 나는 내 미래의 얼굴을 본다.

한때는 이해하기 힘든 노인의 모습도 있었다. 유독 입술을 굳게 닫고 매사에 날 선 반응을 보이던 한 할머니가 기억난다. 작은 도움도 싫다며 손사래를 치고 가시 돋친 말로 주변을 밀어내던 그분은 양로원에서 이른바 ‘괴팍한 노인’으로 통했다. 그러나 그 단단한 껍질 속에는 누구에게도 꺼내 놓지 못한 채 곪아버린 외로움과, 지키지 못한 자존심의 잔해들이 숨어 있었다. 그 세월의 굴곡을 짐작조차 못 했던 젊은 날의 나는 그저 그분을 피하기에 급급했다.

나이 들어 다시 생각해보면 그 날 선 말들은 누군가 자신을 알아봐 달라는, 혹은 더는 상처받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방어 기제였다. "오죽하면 저리 되었을까" 하는 연민이 가슴에 고인다. 뾰족한 성정 뒤에 가려진 앙상한 진심을 볼 수 있게 된 것, 그것은 나이가 내게 준 가장 값진 선물이다. 이제는 그런 괴팍함조차 인생의 고단함을 견뎌낸 훈장처럼 느껴져, 그 주름진 손을 가만히 맞잡고 싶은 마음이 든다.

사실 성공 가도만 달리는 삶은 어디에도 없다. 실수와 실패를 거듭하며 걷다 보니 어느덧 성공이라 부르는 지점에 와 있는 것이 인생의 본모습일 것이다. 겉모습은 어른이었으나 속은 솜털 보송한 햇병아리 같았던 젊은 날을 되돌아본다. 그때의 허물조차 애틋한 추억으로 떠오르는 것을 보니, 나의 인생 항로는 꽤 성공적이었다. 지난날을 되돌아볼 때 사실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그 시절'이 아니라, 그 시간 속에 반짝이며 존재했던 '나 자신'이다.

칠흑 같은 밤, 길 잃은 나그네가 방향을 잡을 때 가장 먼저 찾는 것은 북극성이다. 나는 그저 그 별이 다른 별보다 크고 밝기 때문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북극성은 지축 바로 위에서 제자리를 지키기에, 계절이 바뀌어도 별자리가 흐트러지지 않고 늘 북쪽을 가리키는 것이다. 다른 별들이 화려하게 밤하늘을 수놓으며 자리를 옮길 때도, 북극성은 묵묵히 그곳에 머물며 길 잃은 이의 눈동자가 되어준다.

육십이 넘어서야 비로소 북극성의 진의를 깨닫고 내 삶의 축을 되짚어보는 마음이 못내 부끄럽다. 그래도 나그네가 북극성을 지표 삼아 험한 산맥을 넘듯, 인생의 길에도 나만의 북극성이 있어야 했음을 이제는 알겠다. 타인이 세워둔 이정표만 쫓으며 방향을 구걸했던 무지함에 고개가 숙어진다. 하지만 부끄러움에만 머물기엔 남은 생의 볕이 아깝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신체적 쇠락만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눈이 깊어지는 과정이다. 이제라도 남이 정해준 방향이 아닌, 내 영혼의 지축 위에 나만의 북극성을 띄우고 싶다. 그것은 젊은 날의 욕망과는 다른 지혜다. 타인의 모난 마음까지 긍휼로 품어 안는 넉넉함, 그 본질적인 사랑이 남은 여정의 새로운 축이 되기를 소망한다.

인생은 늘 현재 진행형이기에 매 순간이 황금기여야 하겠지만, 노년이야말로 삶의 본질에 가장 가까워지는 시기가 아닐까. 꿈꾸던 이상과 노년이라는 현실이 교차하고, 비로소 욕망을 내려놓을 줄 아는 나이. 이 시기에 지나온 삶의 무게를 정직하게 인정할 수 있다면, 다가올 노년 또한 멋지게 갈무리할 수 있을 것이다. 나그네가 북극성을 지표 삼아 마침내 안식처를 찾아가듯, 나 또한 내 안의 별을 따라 나답게, 아름답게 늙어가고 싶다.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 바라보기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 바라보기

최 모세( 고전 음악·인문학 교실) 초여름인 6월의 날씨는 밤새 내린 비로 인해 봄날의 산들바람처럼 싱그럽다.빗물 머금은 풋풋한 신록의 나무 잎새는 부드러운 바람결에 하늘거리고 있

[재정칼럼]  천경태의 은퇴를 지키는 쇼셜시큐리티 인사이트 - 은퇴와 생활의 기초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제도 읽기 (17)
[재정칼럼] 천경태의 은퇴를 지키는 쇼셜시큐리티 인사이트 - 은퇴와 생활의 기초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제도 읽기 (17)

대대적인 디지털 대전환 선언: 사회보장국(SSA)의 운영 혁신과 은퇴자 가이드종이 없는 모바일 SSN 도입, 24시간 디지털 서류 제출 등 대고객 서비스 개편 총정리 천경태 (금융

[신앙칼럼] 폭염의 향성: 솔라 피데(Tropism in the Sweltering Heat: Sola Fide, 마태복음Matthew 26:39)

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서론: 믿음의 향성(Tropism of Faith)프랑스 작가 나탈리 사로트(Nathalie Sarraute)는 자극에 끌려 미세하게 반

[추억의 아름다운 시] 나무들

조이스 킬머 나는 결코 볼 수 없으리나무처럼 사랑스러운 시를 굶주린 입으로단물 흐르는 대지의 젖가슴을 물고 있는 나무 온종일 하느님을 바라보며잎새 무성한 팔을 들어 기도하는 나무 

[삶과 생각] 한국전 기념 및 헌화행사
[삶과 생각] 한국전 기념 및 헌화행사

지천(支泉) 권명오 (수필가 / 칼럼니스트) 한미우호협회(회장 박선근, 이사장 프랭크 브레이크)가 주최한 한국전 기념 및 헌화 행사가 지난 7월 24일 엄숙히 거행됐다.1992년부

[수필] 뒷짐 진 삶에게 던지는 질문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평소 같으면 골프를 치고 돌아와 가방만 슬쩍 던져놓고는 조용히 제 할 일을 하던 과묵한 남편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현관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 주택보험 클레임, 무조건 신청해야 하나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 주택보험 클레임, 무조건 신청해야 하나

최선호 보험전문인 똑같은 물건을 남보다 비싸게 사면 괜히 억울한 마음이 든다. 더구나 옆집 사람과 완전히 같은 물건을 샀는데 나만 더 비싼 값을 냈다면 더욱 기분이 좋지 않다. 보

[애틀랜타 칼럼] 나의 부족함이라 말하라

이용희 목사는 실수에 대한 변명은 어리석은 행위이며,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사태를 수습하고 상대의 관용을 이끌어내는 최고의 방법임을 역설한다. 칼럼은 일러스트레이터 페르난도 위렌의 사례를 통해, 비난받을 상황에서 오히려 자기 비판을 먼저 함으로써 까다로운 편집자의 태도를 돌려놓고 신뢰를 회복한 일화를 소개하며 책임지는 자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박영권의 CPA코너]사업용 카드와 개인 카드는 왜 구분해야 하는가?
[박영권의 CPA코너]사업용 카드와 개인 카드는 왜 구분해야 하는가?

박영권 공인회계사 CPA, MBA 사업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준비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사업용 은행 계좌와 크레딧카드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초심의 원칙은 쉽게 무너지곤

[법률칼럼] 비자는 받았지만 입국은 보장되지 않는다

케빈 김 법무사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 많은 사람들은 비자만 있으면 입국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국 이민법에서 비자는 미국 입국을 보장하는 허가증이 아니라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