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가 1962년이었던가. 부통령을 지냈고 대선에 출마했다가 아주 근소한 차이로 패배했으니 말 그대로 ‘전국구 정치인’이었다. 그런 그가 공화당 후보로 캘리포니아주지사 선거전에 뛰어들었다.
그는 다름 아닌 닉슨으로 민주당의 팻 브라운에게 5% 차이로 패배했다. 그러자 언론들은 일제히 같은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닉슨, 정치적으로 사망하다’-.
한마디로 엄청난 쇼크였다. 닉슨은 정치인으로서 커리어로 끝난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모든 것을 훌훌 털고 부인과 세계 일주여행을 떠났다.
프랑스 파리에 도착했을 때 공항에서 펼쳐진 융숭한 예우에 닉슨은 깜짝 놀랐다. 그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당시 프랑스 대통령 드골이 초대까지 했던 것.
드골과의 만남에서 닉슨은 이제는 일개 야인이 된 자신을 왜 이토록 대접하는지 물었다. 드골의 대답은 이랬다고 한다.
‘미국의 대통령이 될 사람에게 요구되는 우선적인 자질은 해외정책 수행능력이다. 이 부문에서 귀하는 몇 명 안 되는 미국 정치인 중의 하나다. 그러니 은인자중하면서 때를 기다려라.’
닉슨 자신도 반신반의 했다고 한다. 그러나 드골의 예언대로 몇 년이 못가 닉슨은 중앙정계에 화려하게 복귀, 월남전이 피크를 이루던 시점에 대통령이 된다.
냉전시대, 그러니까 트루먼 독트린이 발표된 1947년부터 1991년 12월 소련 붕괴까지의 기간 동안 미 대선후보 검증에서 가장 중요시 되던 것은 군 통수권자로서의 자질이었다.
냉전이 종식되면서 대선 분위기는 확 달라졌다. 소련이라는 우환거리가 사라졌다. 이와 함께 해외정책은 뒷전으로 밀리고 대선의 주 어젠다를 차지해온 것은 주로 국내정책이었다.
냉전을 종식시켰다. 거기에다가 걸프전 승리의 영웅이다. 그런 조지 아버지(H. W.) 부시가 무명 정치인에 가깝던 빌 클린턴에게 패배했다. 92년 대선이 바로 그런 흐름의 시작이었다.
Fast Forward. 푸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함께 ‘30년 간의 역사로부터 바캉스 시절’은 끝났다. 그리고 이제 다시 펼쳐지고 있는 게 ‘제 2의 냉전’이다.
그 원년에 치러지는 2024년 미대선. 그 종반전을 향해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October surprise’란 말이 부쩍 자주 등장하고 있다.
‘10월의 기습’, ‘10월의 충격’으로 번역되는 ‘옥토버 서프라이즈’는 선거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막판 변수, 혹은 이벤트들을 지칭한다.
올 대선의 ‘옥토버 서프라이즈’는 그러면 어떤 게 있을 수 있을까. 가장 먼저 언급된 것은 ‘북한의 메가톤급 도발’이다. 이는 NBC뉴스 보도로 북한이 푸틴과의 교감 하에 한반도에서 ‘제3의 전선’을 만드는 도발을 단행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또 다른 ‘옥토버 서프라이즈’ 후보로 거론되는 것은 중동전체가 불바다가 되는 상황이다. 베이루트와 테헤란에서 몇 시간 간격으로 헤즈볼라와 하마스 수뇌가 잇달아 제거됐다.
이에 이스라엘을 타깃으로 하마스, 예멘의 후티 반군, 레바논의 헤즈볼라, 거기에다가 이란도 가세한 파상공세가 전개될 것이라는 관측이 대두되면서 이는 11월 미 대선의 향방을 가를 수 있는 주요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
심각한 부정선거 후유증을 앓고 있는 베네수엘라 사태도 제 3의 주요 변수로 꼽히고 있다.
이 잇단 ‘10월의 기습’설들. 무엇을 말하나. 그 하나, 하나가 위기의 발원지는 해외로 자칫 미국이 전쟁에 말려들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 군 통수권자로서 대권후보들의 자질, 혹은 해외정책 수행능력이 선거 막판에 주 어젠다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