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사람들과의 대화 중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이슈가 ‘성인 ADHD’에 관한 것이다.
“남편이 ADHD라 정말 힘들어요” “나도 ADHD인거 같아요” “제 친구는 ADHD가 심해서 결국 이혼했지요” “증상을 들어보니 바로 내 얘기네…”
하도 여기저기서 자기가 ADHD라고 주장하는 소리를 듣다보니 이게 병인지, 핑계인지, 자랑인지 좀 헷갈리기까지 한다.
ADHD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를 말한다. 주의가 산만하고 가만있지 못하며 충동적인 아이들에게 붙여진 학습장애증상이다. 자녀에게 이런 문제가 있으면 부모들이 학교에 불려 다니며 교육에 애를 먹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질병통제센터(CDC)에 따르면 2022년 미국의 3~17세 소아청소년 700만명(11.4%)이 ADHD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 이 증상은 대부분 자라면서 사라지는데, 약 15%는 성인이 된 후에도 갖고 있다. 현재 미국성인 약 800만명(4%)이 ADHD를 앓고 있으며 이를 자각하는 사람은 20%미만, 치료받는 사람은 4명에 1명꼴이라는 의학보고서가 있다.
성인 ADHD는 어떤 증세를 보일까? 반복되는 실수, 일을 끝내지 못하는 집중력 부족, 잦은 싫증, 어려운 감정조절 등이 세계보건기구(WHO)가 밝힌 성인 ADHD의 증상이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보자. 친구 A의 남편은 한번 시작한 일을 좀체 끝내지 못한다. 하루 이틀 걸릴 일을 몇 달 혹은 해를 넘기도록 미루기만 한다. 뿐만 아니라 주의력이 부족해서 식사할 때마다 음식을 흘리고 묻히고 떨어뜨려 식탁주변이 지저분하기 짝이 없다. “ADHD가 있다는 걸 아니까 살지, 아니면 오래전에 헤어졌을 것”이라고 친구는 한탄한다.
친구 B는 도무지 시간개념이 없고, 정리정돈에 젬병이다. 언제나 헐레벌떡, 약속시간을 지키는 적이 없어서 주변사람들은 아예 체념상태다. 수많은 물건을 모으고 사들이지만 이를 분류하고 정리하지 못해서 집안은 늘 폭탄 맞은 것처럼 정신이 없다.
친구 C는 에너지가 많아서 쉬지 않고 일을 벌인다. 하지만 금방 지루함과 싫증을 느끼고, 잘 까먹으며, 사람들과 회의할 때 차분히 앉아서 대화하기가 힘들다. 생각이 이리저리 튀다보면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기 일쑤여서 눈치 없다거나 4차원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증세들은 개인의 성격과 기질 문제로 여겨졌다. 게으르거나 의지가 약하거나 칠칠치 못하거나 집중력이 떨어지는 사람으로 치부됐고, 정신의학계에서도 이를 따로 질환으로 분류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갑자기 ‘성인 ADHD’가 대두되더니 자기가 바로 그 케이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엄청 늘었다. 자마 정신의학지는 팬데믹 동안 ADHD 치료제(메틸페니데이트)의 처방이 급격하게 늘었는데 특별히 젊은 여성들이 많았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장애가 실제로 증가한 게 아니라 ADHD에 대한 정보가 많아지면서 스스로 자각하는 환자 수가 늘어난 것이라고 보고 있다.
문제는 성인 ADHD의 진단과 치료에 대한 정확한 가이드라인이 아직 확립되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온라인에서 떠도는 정보를 가지고 자가 진단할 수 있는 질환이 아닌데도 집중력이 좀 떨어진다고 해서 스스로를 ADHD로 믿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확실한 것은 ADHD는 성인기에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타고나는 것이며, 12세 이전의 어린 시절부터 보이는 유전성 신경발달장애라는 것이다. 어릴 때는 아니었는데 어른이 되어 ADHD가 생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초등학교 생활기록부가 중요한 진단기준으로 사용된다. “주의가 산만함”이라는 교사 의견이 계속 나올 경우, 확실한 ADHD라 할 수 있다.
또 이런 증상은 한 곳이 아니라 적어도 두 군데에서 일관되게 나타나야한다. 집에서는 괜찮은데 학교에서만 그렇다거나, 친구들과 있을 때는 멀쩡하다가 직장에서 증상이 심해지는 것은 ADHD가 아니라 불안증이나 우울증, 강박장애일 수 있다. 혹은 수면부족이나 끊임없는 디지털 활동 때문에 생기는 행동장애일 수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잠을 푹 자고, 스마트폰과 디지털기기 사용을 줄이면 증세가 크게 호전된다.
중요한 것은 전두엽 기능장애인 ADHD는 지능과는 상관이 없고 고칠 수도 없지만, 에너지 레벨이 높아서 창의적이고 도전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것, 흥미로운 것에는 초집중 과몰입하기 때문에 놀라운 성취를 이루기도 한다. 친구 A의 남편은 젊은 시절 취미였던 음악을 재발견, 광적으로 활동을 재개하면서 조회수 높은 유튜버가 되기도 했다.
ADHD를 가진 유명인이 적지 않은 이유도 바로 그 때문으로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가 대표적이다. 이번 파리올림픽에서 금메달 3개와 은메달 1개를 딴 체조여신 시몬 바일스, 올림픽 역사상 최다인 28개의 메달(금 23) 기록을 세운 수영황제 마이클 펠프스, 또 모차르트, 달리, 피카소, 아인슈타인, 에디슨, 존 F 케네디 등이 어린 시절 ADHD로 왕따 당했으나 초집중으로 이겨낸 인간승리의 주인공들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인ADHD가 있다고 주장하는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이다. 앞서 예를 든 친구들 중 어느 누구도 대인관계와 사회생활에 있어서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다. 커녕 모두 커리어에서 성공했고, 자녀들 잘 키웠고, 노년의 삶을 충분히 인조이하고 있다. 그러니 집중력 부족과 산만함이 정말 병인 건지, 단지 그 사람의 성격인지, 아니면 하기 싫은 걸 피하고 미루는 핑계인 건지, 사실은 아직도 좀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정숙희 LA미주본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