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량은 중국 전국시대의 전략가이자 정치가이다. 자는 자방이다. 전략적인 지혜를 잘 써서 유방이 한을 세우고 천하를 통일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소하, 한신과 함께 ‘삼걸’의 일원으로, 동양 문화권에서 참모의 대명사로 통한다. 한 고조 유방은 “군막에서 계책을 세워 천리 밖에서 벌어진 전쟁을 승리로 이끈 것이 장자방”이라고 극찬을 했다. 사마천도 탁월한 식견을 지닌 ‘하늘이 내린 참모’라 그를 평했다.
이런 장량은 유방이 한나라를 세우자 “천하가 통일됐으니 내가 할 일은 다했다” 말과 함께 돌연 은퇴를 선언한다. 그는 “멈춰야 할 때를 알기에(知止) 물러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량이 천하를 통일한 위업보다 그를 더 후세에 남게 한 것은 이 같은 ‘멈춤의 철학’이다.
장량의 이런 ‘멈춤의 철학’을 체계화한 사람은 수나라 때 유학자 왕통이었다. 그의 철학은 “삶에는 나아가는 일만이 있는 것은 아니고 잠시 멈추는 것도 있다”는 말로 집대성된다.
그는 ‘나아감’과 ‘멈춤’의 상호보완을 강조하면서 멈춤의 ‘지’(止)와 멈추지 않음의 ‘부지’(不止)가 성공과 실패의 분수령이자 큰일을 이루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경계라고 말한다. ‘멈춤’은 패배나 후퇴가 아니라 용기 있고 능동적인 사람만이 실천할 수 있는 철학이자 덕목이라는 것이 왕통 사상의 요체이다.
이런 멈춤의 지혜를 생활의 죽비로 삼고 있는 사람의 하나가 중화권 최대 거부인 홍콩의 리카싱이다. 그는 자신의 사무실에 ‘멈춤을 안다’는 뜻의 ‘지지’(知止)라는 커다란 액자를 걸어 놓고 이를 경계로 삼고 있다.
하지만 멈출 때를 안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돈과 권력을 가지고 있을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지킬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큰 집착이 생기게 마련이고 그런 만큼 물러나거나 멈추는 게 어려워진다. 동서고금 무수한 인물들의 성공과 몰락의 스토리들이 이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대선 후보 첫 TV토론 후 불거진 ‘고령 리스크’로 당 안팎의 압박을 받으면서도 대선 완주 의사를 굽히지 않던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7월21일 대선 후보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발표했다. 현직 대통령이 투표일을 100일 남짓 앞두고 재선 도전을 포기한 건 사상 초유의 일이다. 그의 전격적인 사퇴 발표에 정치권과 유권자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민주당 안팎의 사퇴 압박이 점차 거세지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현직 대통령이 사실상 확정된 후보자리를 내려놓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다.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앉아 있으면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가 어렵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사퇴를 직간접적으로 압박하던 오랜 정치적 동지들에 대한 서운함을 접고 힘든 결단을 내렸다.
바이든의 사퇴 발표가 나오자 뉴욕임스는 사설을 통해 “그는 자신의 자존심과 야망보다 국가의 이익을 우선시 했다”며 “트럼프라면 결코 하지 못했을 용단을 내렸다”고 높이 평가했다. 사설은 바이든의 용퇴로 민주당은 트럼프의 대통령 직 복귀에 따른 위험으로부터 나라를 보호할 가능성이 크게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바이든 사퇴 이후 트럼프의 승리가 기정사실화되던 대선 판세는 급변하고 있다.
노자는 “멈춤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知止不殆)라고 말했다. 바이든이 대선 완주를 고집해 결국 트럼프가 승리하는 결과가 나올 경우 바이든의 정치적 유산이 어떻게 지워지고 사라지게 될지를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래서 옛 성현들은 “멈출 줄 아는 것은 패배가 아니라 자신을 지키는 일”이라고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