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중반 미국은 강달러로 무역·재정 수지의 ‘쌍둥이 적자’와 극심한 경기 침체에 시달렸다. 미국 정부가 1970년대 말 제2차 오일쇼크 등으로 급등한 물가를 잡기 위해 장기간 고금리 정책을 편 것이 화근이었다. 경기 침체에도 물가가 오를까봐 금리도 내리지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진 것이다.
결국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플라자합의(Plaza Accord)’라는 극약 처방을 선택했다. 1985년 9월 당시 레이건 대통령은 미국·영국·독일(서독)·프랑스·일본의 재무부 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을 뉴욕 플라자호텔에 불러 각국이 외환시장에 개입해 인위적으로 달러 가치를 떨어뜨리고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 가치를 올리자고 강제에 가까운 합의를 이끌어냈다.
플라자합의 이후 2년 동안 엔화와 마르크화 가치는 각각 달러화 대비 65.7%, 57%나 절상됐다. 일본인들이 미국 등 해외 자산을 마구 사들이며 일본 국력이 미국을 능가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그러나 일본은 이로 인해 ‘잃어버린 30년’의 장기 저성장의 늪에 빠졌다. 엔고로 수출이 어려워지자 기준금리를 지속적으로 내렸고 부동산·주식 등에 거품이 생기자 금리를 급격히 올리면서 버블이 터지고 장기 침체가 계속됐다. 독일은 유럽연합(EU)의 탄생으로 유로화 체제로 전환하면서 회생의 계기를 마련했다. 한국은 ‘3저(저달러·저유가·저금리) 호황’ 등으로 고성장의 기회를 맞았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측근들이 틈날 때마다 약달러 추진 의지를 밝히고 있어 ‘제2의 플라자합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 제조업을 살리기 위해 달러화 평가절하에 각국이 협조하지 않으면 관세를 올린다는 트럼프 진영의 구상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EU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할 경우 나타날 수 있는 통상 전쟁에 대비해 ‘신속한 협상 제안과 보복관세’라는 당근과 채찍 전략을 짜고 있다. 글로벌 부의 재분배를 초래할 수 있는 환율·통상 전쟁을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도록 치밀하고도 정교한 전략을 세워야 할 때다.
<오현환 서울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