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 IBM등 68개 미국기업들이 경제제재 대상인 북한의 조선중앙은행과 거래를 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한바탕 소동이 일었던 적이 있다. 기업들이 북한산 금을 자사 제품을 만드는데 사용해 왔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금융개혁법에 따라 기업들이 거래 상대자에 대한 정보를 증권거래위원회에 제출하면서 밝혀졌다.
하지만 미국기업들이 북한산 금을 사용한 것은 실수에서 비롯된 것으로 드러났다. 분쟁광물과 관련해 세계적인 허브역할을 해온 한 단체가 작성한 자료에 북한 조선중앙은행 소재지가 한국으로 표기된 데서 일어난 일이었다. 조선중앙은행이 한국의 금융기관인지 북한은행인지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 민간단체의 오류와 무지가 초래한 해프닝이었다.
한국의 위상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많은 외국인들은 한국과 북한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어디서 왔느냐”는 미국인들 질문에 “코리아”라고 답하면 “노스냐 사우스냐?”는 물음이 되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대기업들의 브랜드 이미지 상승과 글로벌 인기를 누리는 연예인들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대한 외국인들의 이해도는 아직 우리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이런 현실은 지난 2018년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외국인들이 평창과 북한의 평양을 혼동해 이 올림픽을 북한에서 개최되는 올림픽으로 오해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를 의식한 듯 평창이 개최지로 결정되자 올림픽 중계권을 갖고 있던 NBC 방송은 인터넷 판에 기사를 올리면서 ‘Pyeongchang(no, not Pyongyang) wins 2018 Olympics’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no와 not이라는 부정어를 두 번씩이나 사용하면서 평양이 아니라 평창이라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이 같은 우려를 충분히 이해할 만한 것은 실제로 외국인들이 한국의 평창에 가려다 실수로 평양으로 간 경우가 여러 번 있었기 때문이다. 2017년에는 평창으로 가려고 8명의 올림픽 관련 기업인들을 태우고 중국 북경공항을 이륙한 한 전세기 조종사가 네비게이션에 ‘평창’ 대신 ‘평양’을 입력하는 바람에 순안공항에 착륙하는 일도 있었다.
민간차원의 이런 사례들은 단순 실수와 해프닝으로 치부할 수 있지만 국호 문제가 걸리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런데 최근 국제무대에서 대한민국의 국명이 잘못 표기되거나 호명되는 일이 잇달아 벌어지고 있어 국민들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지난 금요일 개막한 프랑스 파리 올림픽 개막식에서 주최측이 대한민국 선수단을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뜻하는 단어(불어 Republique populaire democratique de Coree, 영어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로 잘못 소개한 것이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다음 날 윤석열 대통령에게 전화해 사과했지만 국민들의 상한 기분을 풀어주기에는 부족했다.
문제는 이와 비슷한 일이 6월 달에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스위스 뷔르겐슈톡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평화 정상회의’ 공동성명 참여국 83개국 명단에 오른 대한민국의 영문국호가 ‘Republic of South Korea’로 잘못 표기된 것이다. 대한민국 영문국호에는 ‘South’가 들어가지 않는다. 해외에서 한국을 약칭할 때 쓰는 ‘South Korea’와 국호를 혼동하면서 벌어진 일로 추정된다. 한국정부는 즉각 항의했다고 밝혔다,
분단 상황 속에서 외국인들과 외국정부가 한국과 북한을 혼동하는 상황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을 단순 해프닝이나 실수로만 치부해 버려서는 안 된다. 특히 국호와 관련해서는 더욱 그렇다. 항의하고 사과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사고가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전에 철저히 점검·확인하고 다짐을 받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