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자(전 숙명여대 미주총동문회장)
찰싹! 찰싹!
하얀 두루마기 입은 선비 처럼
억겁의 세월을 아프게 달려 왔구나…
난 항상 빈손이었지…
밤이면 별을 보고 길을 찾았고
바람이 날 데리고 낯선 물결에 몸을 실었지…
이글거린 태양에 몸을 태워 물결 위에 부서지고
가진 건 하나없는 빈손이었지…
어느 날 낯선 항구에 닿아
하얗게 부서진다
하얀 모래성을 어루만지며
부서진 파도는 다시 바다가 된다
바다야 !
바다야 !
파도가 머물다 간 빈 그자리
빈 바람 소리 뿐
빈손이었다.
나는 파도가 아니라 바다였음을…
빈손으로…
빈손으로…
그냥 잠시 왔다 간다. (시, 파도야 , 박경자 )
몇 년 전 지중해 해안을 여행했을 때, 유럽의 역사를 돌아보며 천년을 지었다는 화려한 왕실, 르네상스의 문화, 예술의 꽃이었던 유럽의 문화, 예술을 돌아보았다. 실로 미국 땅만한 유럽에는 예술, 문화 인간의 힘으로 상상할 수도 없는 문화 예술의 유적으로 꽃을 피웠다. 알프스 계곡마다 흘러 내린 물줄기가 강을 이루고, 불란서에서는 세느강이 흐르고 , 다뉴브 강줄기 사이로 히틀러가 태어나고, 모차르트가 태어나고 손가락처럼 갈라진 다뉴브 물결 사이로 역사가 흐르고, 역사를 만든 사람들 보헤미안의 눈물이 만든 바람같은 나그네들의 삶이 푸른 다뉴브 강 사이를 흐른다. 몇날을 유럽의 역사를 돌아 보며 바이킹들의 스쳐간 흔적 사이로 모차르트 같은 예술가들이 태어난 유럽의 역사는 짧은 미국의 역사에 비하면 그 예술의 혼이 도시마다 아름답게 수놓아 있었다.
우리 여행에 꽃은 마지막 코스로 '파라다이스 아일랜드'였다. 인간이 만들어 낸 아름다운 르네상스의 예술을 다 돌아보고 과연 어디에 이보다 더 아름다운 '파라다이스 아일랜드'가 숨어있단 말인가… 들뜬 우리 일행은 버스에 실려 화려한 도심을 지나 울창한 숲속을 떠나 꿈에 그린 '파라 다이스 아일랜드'를 향해 길을 떠났다. 얼마 후 어느 낯선 바닷가에 도착한 우리를 기다린 보트가 정박한 곳에 두 사람씩 보트를 타고 '파라다이스 아일랜드'로 항해를 하였다. 푸른 대양 그 어디에 숨겨있을 화려한 왕실, 꿈의 요람이 숨겨져 있을까…
우리를 실은 작은 보트는 어느 낯선 작은 모래성에 내려놓았다. 대양 한가운데 텅빈 모래 사장에 연초록 물결이 모래성을 쓰다듬고 있었다. 억겁의 세월을 달려 온 파도 빈 물결이 소리없이 왔다 빈손으로 다시 바다가 된다. 물결이 쓰다듬고 왔다가 빈 손으로 떠난 그 자리 몇 알의 모래 알갱이가 섬을 어루 만지다 빈손으로 떠난다. 연옥색 물결이 쓰다듬고 간 빈 그자리 '파라다이스 아일랜드'라는 작은 팻말이 서있을 뿐 섬은 텅 비어있었다.
파라다이스 아일랜드
텅빈 바람이 , 구름이
파도를 싣고 왔다가
빈손으로 떠난다
거긴 학교도 없었다
천년을 지었다는 왕실도 없었다
부, 명예도 없었다.
화려한 르네상스 예술의 흔적도 없었다
사람이라는 동물이 지구 어느 구석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삶도 죽음조차 모른다
비움도, 얻음도, 알고,모름도 모른다.
억겁의 세월을 달려 온
파도가 왔다가 빈손을 떠난다
파도야 , 파도야…
대양을 달려오느라 얼마나 아프니 ?
파도가 하는 말
나는 파도가 아니라 바다야… (시, 박경자 바다야, 바다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