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30일 연방대법원이 대통령의 면책권에 관한 중대한 판결을 내렸다. 트럼프가 2020년 대선 결과를 뒤집으려 음모했고 의사당 난입사건을 선동했다는 혐의로 잭 스미스 특별검사에 의해서 기소된 형사 케이스에 대한 판결이었다. 그러나 본 판결은 전 대통령 한명에 대한 형사케이스의 판결 이상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 대통령의 면책권은 곧 대통령의 권력행사의 한계를 규정해 주기 때문이다.
연방 헌법에는 대통령의 면책권에 대한 조항이 없다. 또 미 역사상 트럼프가 형사 케이스로 기소된 최초의 대통령이다. 따라서 이번 판결은 앞으로도 있을 수 있는 대통령의 형사케이스 재판에서 따라야 될 첫 판례가 된 것이다.
트럼프가 DC 연방 지방법원에 기소되자 그의 변호인단은 대통령의 면책권을 근거로 스미스 검사의 기소 기각을 요구했다. 트럼프의 기각 요구가 DC 지방법원과 순회항소법원에서 거절되자 트럼프는 대법원에 DC 순회항소법원의 판결을 검토해 줄 것을 요청했고, 대법원은 지난 4월 법정 논쟁을 거친 후 6월 30일 최종판결을 내린 것이다.
본 판결에서 대법원은 헌법에 의해 대통령에게 부여된 고유 권한(사면권, 법안 비토권, 대사 신임장 제정, 임명권 등)과 관련된 공적 행위은 절대적인 면책특권이 있음을 인정했다. 또 대법원은 대통령의 다른 공적 행위도, 검찰의 기소가 행정부의 권한과 기능 수행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는 한, 형사적 기소로 부터 면책된다고 판결했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작성한 43페이지의 판결문은 대통령도 법 위에 있지 않다는 것을 천명하고, 대통령의 사적 행위는 형사적 면책이 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단 대통령이 행한 공적행위가 그의 사적인 행위에 대한 형사재판에서 증거로 채택될 수 없다고 판결함으로써, 대통령의 업무집행이 가능한 형사적 책임 때문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을 최소화했다.
트럼프의 케이스에서 무엇이 공적인 행위이고 무엇이 사적인 행위인지는 형사재판정에서 배심원들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는 대법원의 명령에 따라 DC 연방지방법원으로 되돌려 보내졌다. 본 대법원 판결로 현재 법원에 계류 중에 있는 트럼프의 다른 케이스들도 재 검토되어야 할 상태이다. 11월 대선 전에 트럼프의 케이스에 대한 최종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희박해진 것이다. 이미 뉴욕 주 맨하탄 지역법원 제 1심 재판에서 유죄 판결이 나온 트럼프 케이스에 대한 판사의 형 선고도 9월까지 연기되었다. 또 트럼프는 동 재판에서 트럼프가 대통령시 행한 공적 행위가 증거로 채택된 것은 연방 대법원의 판결에 위배되므로 트럼프 케이스를 기각할 것을 법원에 요구한 상태다.
트럼프 케이스들에 대한 재판이 미루어 지고 트럼프가 유죄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약해지자 바이든을 비롯한 진보 민주계와 진보 성향의 언론 매체들은 동 대법원의 판결이 다수인 보수 성향의 대법관들에 의해서 내려진 트럼프에게 유리한 이념적 정치적 판결이라고 맹 비난을 쏟아냈다. 그러나 로버츠 대법관은 판결문에서 본 판결이 트럼프 케이스에 대한 단시적인 판결이라기 보다,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대통령에 대한 형사 케이스들과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위한 권력행사에 관련된 장기적 안목의 판결임을 분명히 밝혔다.
7월13일 피츠버그 교외에서 유세 중인 트럼프의 암살 시도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현재 미국은 11월 대선을 앞두고 진보와 보수 간에 치열한 총력전이 전개되고 있다. 선진 민주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걱정스러운 현상이다. 이런 극도의 이념적 분열과 정권장악을 위한 싸움이 지속된다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 대통령에 대한 추적 조사와 기소가 반복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교적 광범위하게 대통령의 면책권을 인정한 본 대법원 판결로 앞으로 있을 수 있는 전 대통령을 겨냥한 정치적 추적 조사나 형사기소의 가능성이 크게 낮아질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하원에서 아들 헌터 바이던의 비즈니스 케이스와 관련된 혐의로 탄핵 심문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바이든에게도 희소식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대선을 앞두고 자신의 이념이나 정치적 성향에 따라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헌법에서 보장된 표현의 자유이다. 언론매체들의 선거에 관한 기사나 논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민주국가의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 특히 대법원의 최종 판결에 대해서는 편견적인 이념이나 의견에 따라 비판하기 전에 판결에 대한 논리적 배경도 이해하고 판결이 가져다 줄 수 있는 결과도 유추해 보는 것이 민주시민으로써의 옳은 자세가 아닌가 생각한다.
<박옥춘 전 교육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