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을 담는 그릇, 곧 하나님의 생명이 흘러나오는 처소, <하나님의 집>입니다.
누가복음 11장의 말씀의 맥은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시면서 첫 번째로 강조하신 것은 <기도의 대상자>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의 집>이라는 큰 그림을 그려 주시기 위해 <아버지여!>라는 말로 기도를 시작하게 하셨습니다(눅11:2). 우리의 영혼, 아버지 하나님이 머무시는 집을 한 단어로 압축하면 <영혼의 집>으로 집약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 우리가 살아있다’는 현재 진행형의 실존을 영적으로 표현하면, ‘우리 영혼이 하나님의 집 안에 살고 있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처소>인 우리 영혼을 집과 연관하여 ‘우리 영혼이 올바른 상태를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깨우쳐 주시기 위해 <영혼의 빈 집>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가르쳐 주십니다.
<영혼의 빈 집>의 메시지를 세 가지 강조점을 통하여 교훈 하고 계십니다. 첫째로 <영혼의 빈 집>을 잘 지키기 위해서는 강한 자의 무장이 첫 번째 파수의 급선무라는 것이고, 둘째로 <영혼의 빈 집>이 온전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함께 하셔야 된다는 것이고, 세째로 <영혼의 빈 집>은 깨끗이 청소한 후의 비어 있는 상태가 언제나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교훈은 22절 말씀입니다. “더 강한 자가 와서 그를 굴복시킬 때에는 그가 믿던 무장을 빼앗고 그의 재물을 나누느니라.” 이 말씀에서 예수님의 강조점은 <강한 자가 더 강한 자가 되려면 무장을 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무장군인의 결정적인 아킬레스근은 무장 결집이냐? 무장해제냐? 가 그 관건입니다. <영혼의 빈 집>을 강한 자보다 더 강한 자의 무장을 한 경우는 무장결집의 경우로서 필승을 장담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는 무장해제를 당함으로써 무장소멸이라는 비참한 패배를 맞이하는 <패잔병>으로 추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원리도 동일합니다. 무장해제된 <영적 패잔병>으로 추락하는 그리스도인은 그 삶의 실존이 흔들리고, 무너지고 급기야 우리 영혼의 적인 마귀에게 점령당합니다. 베드로는 직설법으로 선포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바울은 <군사용어>로 강력하게 선포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엡 6:12-13).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을 담는 그릇일진대, 약한 그릇은 먼저 깨어집니다. 영원한 강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무장한 십자가의 군사입니다. 예수님을 가슴에 안고 사는 사람만이 <영혼의 빈 집>을 굳건하게 지키는 <영원한 강자>가 될 것입니다.
두번째 교훈은 23절입니다. “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공생애가 시작되면서부터 예수님과 사탄과의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으며, 이 영적 전쟁에서는 결코 중립적인 자세는 불허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자만이 예수님의 편이요 <영혼의 빈 집>을 굳건하게 파수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교훈은 24절로 26절입니다. 귀신은 언제나 우리 영혼의 적이요, 원수로서 영혼을 점령하여 우리 영혼을 산산조각 소멸하고자 하는 것이 마귀의 목표입니다. <영혼의 빈 집>은 예수로 가득히 채워야 하는 <영원한 하나님의 집, 천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