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 (價性比, Cost-effectiveness)’가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오늘날 특별히 더 자주 ‘가격 대비 성능’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만큼 현명한 소비가 요구되는 경제상황에 우리가 놓여 있음을 뜻한다.
가성비는 주로 제품의 품질에 초점을 맞춘 개념이지만, 그 의미가 ‘투자한 금액 대비 만족도’로 확장되면서 음식점과 호텔 등 서비스 산업에도 적용되고 있다.
최근에 ‘크리스찬 디올’이라는 프랑스 하이앤드 명품 패션하우스가 지속적으로 언론에 오르내린다.
디올은 가방 이외에 옷과 향수 등을 주로 취급하는데, 세계대전 이후 실용성을 지향했던 샤넬과 달리 1947년 첫 컬렉션에서 극도의 여성성을 강조하는 ‘New Look’이라는 새로운 스타일로 선풍을 일으키면서 오늘날까지 그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이러한 디올이 최근 한국에서 정치적인 이슈에 휘말리더니 밀라노 법원으로부터 중국 하청업체의 노동착취를 방치하고 조장한 혐의와 함께 사법행정적 제재를 받았다.
중국 하청업체 4곳의 노동자들이 밤샘 근무와 휴일 근무 등을 하면서 생산라인을 24시간 풀가동해서 만든 가방이 디올에 넘겨 ‘장인이 한땀 한땀 정성들여 만든’ 3,000달러 상당의 디올백으로 둔갑한 공급가격, 즉 생산원가는 60여 달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몇해 전 조영남의 그림 대작논란이 결국은 무죄로 결론 나면서 작품의 가치와 본질은 아이디어, 즉 작품에 대한 발상과 창작하는 과정에 있음이 법원의 판결로 확인된 바 있다.
극단적으로는 예술도 발명품을 공장에 의뢰해 만들거나 3D 프린트 업체가 찍어내는 것처럼 제작과 다름없는 과정을 통해 생산될 수 있는 시대가 현대이다.
알고 보면 명품과 그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대필작가도 즐비하고 수많은 Franchisee가 Franchisor의 이름을 빌려 장사를 하는 세상이다. 앤디워홀의 ‘일단 유명해져라. 그러면 똥을 싸도 사람들이 박수를 쳐줄 것이다’는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그러나 예술은 기술과 엄연히 다르고, 작품이나 명품은 제품과는 격이 달라야 하는 것이 상식적인 기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명세에 덧씌워져 부풀려진 평가에 그 가치를 폄하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왜냐하면 원론적으로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단순히 광고 효과나 군중심리에 의해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수요가 넘친다면 가격은 오르기 마련이다.
결국 예술과 기술은 상술을 통해 대등한 지위를 누리는 요술의 영역에 들어섰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들 일반대중, 소비자들의 높은 자존감이다.
물질만능이 빚어낸 자본주의 정점에서 내면의 고귀함을 꿋꿋이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가성비의 철학은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고 믿는다.
<폴 김 뉴욕 전 재미부동산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