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가주의 회사원 P씨는 아버지 걱정에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80대의 아버지가 운전을 하다가 자주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주차 중 옆 차를 긁거나 주행 중 신호를 못 봐서 앞차를 들이 받는 등 접촉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신호등이 파란색인데 갑자기 정차를 하기도하고, 프리웨이에서 시속 30마일로 ‘쌩쌩’ 달리니 언제 어떤 사고가 날지 알 수가 없다.
그중 불안한 것은 음주운전. 모임에서 한잔 한 후에도 노인은 기어이 운전을 한다. 본인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위험에 빠트릴 수 있는 위험천만한 행동이다. “이제 운전을 그만 하실 때가 되었다”고 가족들이 아무리 말해도 노인은 막무가내. 자동차 열쇠를 움켜잡고 있다.
노년에 내려야 할 중대한 결단 중 하나는 운전 포기이다. 어느 시점이 되면 자동차 열쇠를 스스로 내려놓아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언제 어디든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권리, 수십년 누려온 권리를 포기하는 게 쉬울 수는 없다. 한낱 자동차 열쇠가 그러하다면 백악관 열쇠는 어떠할까.
지난 주 대선후보 첫 TV 토론 후 지금 미국은 ‘바이든’ 이슈로 뜨겁다. ‘바이든’이라는 이름이 이렇게 자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적은 일찍이 없었을 것이다. 정치해설가나 칼럼니스트들은 요즘 입만 열면 ‘바이든’이다. 대중의 지지를 먹고 사는 정치인으로서 이름이 많이 불린다는 것은 더 없이 반가운 일이지만 그 다음에 따라붙는 동사가 문제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미디어 그리고 정치 칼럼니스트 중 열의 아홉은 바이든이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부분 민주당 성향인 그들 그리고 민주당 유권자들은 싫든 좋든 바이든을 지지해왔다. 트럼프가 다시 백악관에 들어가 나라의 근본을 뒤흔드는 재앙을 막으려면 바이든이 재선에 승리해서 백악관을 지키는 길밖에 없다고 믿었다. 그런데 후보 토론이 분위기를 확 바꿔 놓았다.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들었다. 바이든의 노쇠한 모습이 TV 화면에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이대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성난 파도처럼 들끓고 있다.
“바이든이 중도 사퇴하는 것이 미국의 민주주의를 살리는 길이자 애국하는 길이며 국민을 위하는 길이다” “부통령으로서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보좌하고, 미국 최초로 유색인종 여성을 부통령으로 영입하면서 바이든은 정치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 아름다운 업적을 이어가는 길은 지금 물러나는 것이다” 등등. 바이든과 ‘헤어질 결심’들이 확고하다.
반면 바이든은 물러날 생각이 없다. 완주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민주당 전당대회가 바로 다음달. 대선후보를 결정할 대의원 지지 99%를 확보했고, 천문학적 선거자금도 마련했다. 이제 와서 중도사퇴라니 … 그로서는 어불성설일 것이다.
바이든이 재선에 출마하지 말라는 말을 들어온 것은 백악관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나이가 너무 많다는 지적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꿋꿋하게 재선에 도전했다. 국가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넘쳐서일 수도 있고, 트럼프를 막을 인물은 자신밖에 없다고 믿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울러 짚어지는 것은 권력의 마력. 자동차 열쇠가 권리라면 백악관 열쇠는 권력이다. 한번 맛보면 내어놓기 어렵기로 유명하다. 그럼에도 미국의 여러 대통령들은 그 유혹을 뿌리쳤다. “권력은 매혹적이다. 도박이나 돈처럼 사람의 핏속으로 파고든다.” - 해리 트루먼이 1950년 재선에 나가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쓴 말이다. 민주당 진영의 헤어질 결심 앞에서 바이든이 어떤 결단을 내릴지,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