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루이스(C.S. Lewis)는 우리 시대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천국모략(Conspiracy For Heaven)을 다음과 같이 제시합니다. “당신이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생각한다면, 경고하건대 당신의 두뇌를 비롯해 모든 것을 쏟아 부어야 할 그 무엇을 시작하고 있음을 잊지 말라. 착하고 상냥한 종이 되라. 그뿐 아니라 그대가 할 수 있는 한 영리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라.”
이것을 모토로 하여 다시 돌아보고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입니다. 예수님은 천국모략가이십니다. 그 이유는 천국을 직설적인 표현으로 단 한 번도 말씀하시지 않고 그것을 비유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산상수훈은 지상에서 인간의 언어로 설교한 그 어떤 설교가의 설교와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천국의 메시지를 세 편의 설교 안에서 모든 것을 쏟아 내셨지만 인간의 두뇌로 이해하려고 부분적인 편린으로 분석하려는 우매한 노력으로는 접근할 수 없도록 말씀을 전하셨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참된 믿음이 있을 때 도약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천국의 모략은 세상의 잣대로 세상의 지식으로 가늠할 수 없는 무변광대한 천국의 메시지를 마음에 초점을 맞추셨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통전적인 시대의 오류는 예수님의 지성을 왜곡하거나 무시하려는 헛된 노력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횡설수설 내뱉은 엉뚱하면서도 뭔가 심오해 보이려고 애를 쓰는 그들의 급진적인 말들은 오히려 예수님의 천국모략에 대하여 오해만 불러일으킬 뿐입니다.
물과 기름이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예수님의 모략과 인간의 얄팍한 지성은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2-3세기의유명한 그리스도인 지도자 테르툴리아누스가 예리하게 지적합니다. “예루살렘이 아테네와, 교회가 아카데미와, 그리스도인이 이교도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이 역설적인 질문의 명쾌한 해답은 “하등의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나라는 마치 거룩함과 지성의 부조화의 갈등관계와 같습니다.
마태복음 5장의 첫 시작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의 그들의 것임이요”입니다. 예수님의 천국모략은 단순한 언어를 사용하시나 그 단순함을 단순함으로 결코 풀 수 없는 천국의 수수께끼입니다. “가난한”의 표현은 부자나 권력가들의 경제적 수탈과 사회적 억압에서 자신을 구원할 능력이 없는 경제파산자를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천국모략은 현재의 실존이 아니라 미래의 실존인 천국을 말씀하시기에 결코 단순메시지가 아닙니다.
우리시대뿐만 아니라, 앞으로 올 미래시대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하시는 종말론적 메시지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모든 것이 그 어느 하나 존재하지 않을 때 비로소 그 자리에 예수님이 들어오실 수 있음을 말하며, 이 마음으로 예수님을 맞이할 때, 천국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요일 1:1-5, 2:3, 4:7-8, 13).
천국은 분명히 하나님의 모략입니다. 알 수 있게 나타내는 나라가 아니라 알 수 없게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모략의 실존이 천국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역시 천국을 알 수 있게 전하지 않으신 것은 우리의 마음의 모략이 결코 예수님의 천국모략을 능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겸손한 자만이 천국의 비밀에 입성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태복음 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