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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의 시선] 안나 카레니나, 조프리 발레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4-06-26 17:4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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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세계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첫 문장으로 꼽히는 레프 톨스토이의 장편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다. 

그런데 이 소설에는 행복한 가정은 등장하지 않고,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한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세 커플이 등장한다. 그 가운데 사랑 없는 결혼생활로 시들어가던 한 여인이 젊은 장교와 사랑에 빠져 불륜을 저지른 후, 그 사랑마저 식어버리자 달려오는 열차에 뛰어들어 생을 마감하는 스토리가 소설의 뼈대다. 

동시대의 대문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는 이 작품에 대해 “예술적으로 완전무결하여 현대 유럽문학 중 견줄만한 소설이 없다”고 극찬했다. 본고장 러시아에서는 물론이고 영미권 작가들도 가장 좋아하는 소설로 첫 손가락에 꼽는 ‘안나 카레니나’는 워싱턴포스트가 2007년 ‘미국작가들이 뽑은 최고의 소설’ 1위에 선정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전쟁과 평화’, ‘부활’과 함께 톨스토이의 3대 걸작으로 사랑받고 있으며, 몇년전 ‘알쓸신잡’에서 소설가 김영하가 ‘무인도에 가져갈 한 권의 책’으로 ‘안나 카레니나’를 꼽으면서 다시 한 번 주목받았다.

언뜻 보면 ‘불륜녀의 최후’라는 단순한 스토리라인이지만, 톨스토이는 3권에 달하는 이 방대한 소설을 통해 1870년대 러시아 상류층의 위선을 비판했다. 150명이 넘는 인간군상의 심리와 관계, 사랑과 배신, 결혼이란 제도, 사회적 체면과 부도덕의 잣대 등을 해부하는 한편 러시아의 철학, 종교, 사회문제를 엄청난 스케일로 직조해 넣음으로써 위대한 소설을 낳은 것이다. 

현대에 와서는 한 여인의 ‘자아발견’ 소설로도 읽힌다. 외적으로도 아름답지만 내면에서 남다른 활기와 생기를 뿜어내는 여인 안나는 고위관료 남편과 어린 아들을 둔 완벽한 귀족부인이며 사교계의 꽃이다. 하지만 그녀는 관습적인 결혼생활과 정형화된 상류사회에서 숨 막히는 지루함을 느끼고, 그때 미남청년 장교 브론스키가 저돌적으로 구애해오자 억눌려있던 삶의 에너지가 만개하는 것을 느끼며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인다. 

그 선택은 가혹하고 불행한 결과를 낳지만, 그녀는 죽음이라는 또 다른 선택으로 자신의 생을 끝낸다. 어쩌면 안나에게 중요한 건 사랑보다 ‘살아있음’을 자각하고픈 갈망이었을 것이다. 톨스토이는 이 소설의 착상을 “결혼 후 자기 자신을 상실한 여성을 가련하고 죄 없는 존재로 만드는 것”으로 설정했다. 단순히 남편과 아이를 배신하고 떠나버린 부도덕한 여인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살아보려 했던 가엾은 존재’로 연민을 가지고 묘사한 이유다. 

상류 사교계를 배경으로 사랑과 배신, 격정과 비극, 추락과 죽음을 드라마틱하게 다룬 이 소설은 지난 100년 동안 연극, 영화, 발레, 오페라, 뮤지컬 등 예술 전 분야를 통해 숱한 작품으로 각색되었다. 

영화로는 불세출의 배우 그레타 가르보가 주연한 작품이 두 편 있다. 1927년의 무성영화와 1935년 흑백영화로, 여기서 가르보는 제1회 뉴욕비평가협회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또 비비안 리가 주연한 1947년 영화가 있고 최근에는 재클린 비셋(1985), 소피 마르소(1997), 키이라 나이틀리(2012)가 주연한 영화들이 있다. 뮤지컬은 1992년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2016년 러시아 뮤지컬이 모두 수작으로 각광받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발레 역시 세계 유수 발레단의 안무가들이 만든 다양한 버전의 작품이 있다. 가장 많이 공연되는 것이 마린스키 발레(알렉세이 라트만스키 안무)와 볼쇼이 발레(보리스 에이프만 안무), 취리히 발레(크리스티안 슈푹 안무)의 것이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함부르그 발레(존 노이마이어 안무) 공연도 뛰어난 작품으로 꼽힌다. 

LA뮤직센터의 글로리아 코프만 댄스 프로그램이 지난 주말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온에서 조프리 발레(Joffrey Ballet)의 최신판 ‘안나 카레니나’를 공연했다. 2019년 유리 포소코브가 안무하여 시카고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그해 무용계의 오스카라 불리는 ‘브누아 드라 당스’ 안무상을 수상한 대작으로, 놀랄 만큼 아름다운 수작이다. 

고전 발레와 콘템포러리 댄스를 조화시킨 날카로운 안무를 30여명의 댄서들이 라이브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맞추어 역동적이며 화려한 춤과 연기로 펼쳐내었다. 다른 작품들이 차이코프스키와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주로 사용하는데 비해 이 작품은 직접 위촉한 오리지널 음악(Ilya Demutsky)을 풀 오케스트라가 연주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특히 세 장면에서 메조소프라노(Lindsay Metzger)가 러시아 민요풍의 노래를 부르는데 가슴을 울리는 선율과 목소리가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한다.  

특별히 슬릭한 세트디자인이 압권이었다. 기하학적 프레임들이 상하전방좌우로 움직이면서 영상 프로젝션과 조명을 활용해 순식간에 장면을 무도회에서 집안으로, 사교행사에서 경마장으로, 그리고 철도 역사로 전환시키는 묘사가 매혹적이었다. 19세기 러시아 제국시대를 충실히 구현한 의상도 나무랄 데 없었고, 무엇보다 모든 댄서의 기량이 최고 수준이어서 흡족했다.   

조프리 발레는 2018년에도 기가 막힌 모던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을 가져와 크게 히트했는데 언제 다시 또 좋은 공연으로 만날지 기대된다. 

뮤직센터 댄스는 오는 7월12~14일 ‘발레 히스패니코’의 ‘도냐 페론’ 공연을 갖는다. 아르헨티나의 에비타를 주인공으로 한 이 공연 또한 기대가 크다.      <정숙희 LA미주본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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