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이른 아침, 마당에 나선다. 400평 남짓한 내 집터 곳곳에 꽃향기가 좋은 나무를 심고 나만의 둘레길을 만들었다. 새소리를 들으며 이 길을 걷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6월 들어 온갖 꽃향기에 내 걸음은 거북이처럼 느리다. 뒷마당에 첫걸음을 내딛고는 하얀 연꽃처럼 생긴 스위트베이 마그놀리아 꽃향에 멈추고, 모퉁이를 돌아 옆마당의 오크리프(Oakleaf) 수국향에 또 한참을 머문다. 앞마당에 이르러 겹겹의 하얀 꽃잎을 두 팔 벌려 환영하듯 활짝 펼친 치자나무 옆에 앉아 하염없이 그 향에 취하고, 몇 걸음 옮겨 빨간 장미에도 인사를 건넨다.
크지 않은 마당을 그렇게 한 시간을 넘게 돌고 들어와 아침 식사를 챙기고 한국에 계신 엄마에게 안부 인사를 드리는 것으로 내 6월의 일상은 이어진다. 카톡 영상화면이 켜지자마자 엄마는 환하게 웃는다. 혼자 사시는 백발노인인 엄마가 활짝 웃는 일은 드물다. “오늘은 아름채에 간 중에 최고로 내 입에 맞는 점심이 나왔다.” 아름채는 엄마 동네에 있는 노인복지회관이다. 아버지 살아계실 때 장기를 좋아하셔서 매일 그곳에 가 장기를 두시면 엄마는 노인들만 있는 곳에 가기 싫다며 수영장과 강의 시설이 있는 다른 문화관을 다니셨다. 근래 들어 무릎 수술 후 찬 수영장 물보다 따뜻한 물에 찜질이 좋다며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목욕탕이 있는 아름채에서 따뜻한 물에 찜질도 하고 식사도 하는데, 매번 점심에 소시지, 떡볶이, 순대 같은 아이들이 좋아할 듯한 것이 나오고 입맛에 맞는 건 하나 없다고 불평하시곤 했다.
“오늘은 비빔밥에, 미역국, 작은 조기에 샐러드까지 내가 다 먹을 수 있는 거였어. 게다가, 점심이나 따뜻한 목욕탕뿐 아니라 아름채 식당엔 휴대폰 사용법을 가르쳐주는 봉사자들이 있어. 지난 주엔 문자 보내는 거 배웠는데, 오늘은 내가 받은 사진이나 문구를 다른 이에게 보내는 걸 배웠다.” 엄마의 얼굴은 새로운 것을 학습한 이의 뿌듯함으로 빛났다. “와 정말요? 오늘 받은 것 중 좋은 거 제게 한 번 보내보세요.” 내 말에 엄마는 풀 죽은 목소리로 답했다. “여름에 덥다고 찬물을 마시거나 찬물에 씻으면 안 된다고 장황하게 설명한 글을 오늘 받았는데, 이걸 복사해서 보내려니 연습을 좀 더 해봐야 할 것 같다.” 봉사자가 보내고 싶은 화면의 문구를 복사해 붙여 보내는 법을 설명해 적어주었는데 아직 연습을 잘 못했다는 것이다. “카톡에서 받는 건 그렇게 하실 필요 없어요. 엄마가 받은 사진이나 글, 영상 옆에 보면 화살표가 있는데 그 화살표 누르면 그 다음에 카톡에서 누구에게 보낼지 정하라고 엄마가 주고받은 이들의 명단이 쭉 떠요. 그중에서 절 지정해 누르고 ‘보내기’를 누르시면 저한테 와요. 지금 이 통화 끊고 한 번 해보세요.”
전화를 끊고 곧이어 엄마에게서 문자가 왔다. 그리고 곧바로 다시 영상전화가 왔다. “내가 보낸 거 받았냐?” 네, 받았어요. 막 읽고 있었어요. 내 답에 엄마 얼굴은 환해지셨다. “이렇게 하니 정말 쉽네. 이렇게 쉬운 걸 그동안 핑계만 대고 못 배웠으니… 이제 끊자. 내 친구한테도 보내줘야겠다.” 평소 내가 전화를 끊으려고 하면 혼자 계신 밤이 적적해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놓으며 나를 붙잡으시던 엄마가 뚝 전화를 끊으셨다.
엄마의 얼굴이 사라진 화면을 바라보며 난 노인복지회관에서 봉사한 분을 떠올렸다. 지난주엔 은퇴 나이에 접어든 듯한 한 남자가 봉사원이었는데 오늘은 가정주부인 듯한 한 여자가 가르쳐줬다고 했다. 작은 씨앗처럼 눈에 크게 띄지 않는 이런 선행이 씨앗이 자라 꽃과 열매를 가져오듯 세상을 윤택하고 풍요롭게 만든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송윤성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