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자(시인·수필가)
어느 틈에 벌써 오월이 떠나고 유월이 열리고 있다. 6월이면 한해의 허리춤에 다다른 셈이 되기에 갑진년도 반은 달려와 버린 듯 하다. 이미 윗도리 소매는 짧아졌지만 바지도 점점 짧아지고 산책길에선 모기가 윙윙거리기 시작했다. 최근 연방정부에서 해수면 온도 상승으로 예년보다 더욱 발달한 허리케인이 예상되고 폭풍, 홍수, 해일로 인한 내륙 침수 현상을 경고한 바가 있다. 적당하게 더위를 보냈으면 좋겠지만 6월 특유의 싱그러움으로 다양한 즐거움이 우리네 일상에 찾아들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향기로 열리는 6월 마중에 나섰다.
아카시아 향기가 봄 끝자락이 다가온 줄을 눈치 체 듯 6월도 시절을 따라 새로운 시도로 산뜻한 모드의 향기 분출을 위해 아름다운 도모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진부함을 떠나 막강한 녹색으로 덧입히며 독창적 예찬을 거리낌 없이 구가하기 위해 하늘도 대지도 만상도 6월 맞이에 여념이 없다. 어김없이 돌아온 6월이 익숙한 향기로 인사를 건넨다.
봄 향기가 부드럽게 다가오면 새순이 싹을 내밀고 연두가 만발하고 봄 끝자락이 완연해 지면 대지는 초록 푸르름으로 단장한다. 6월 향기 속으로 초대받은 노구의 여인을 설레게 만든다. 봄의 끝자락에서 어느 틈에 연두를 지나 초록으로 짙어가는 싱그러운 잎사귀 색깔에서 새로운 계절을 느끼게 되고 푸름조차 향기로 받아들여진다. 자연 속에 존재하는 어떤 무엇도 향기로 스며드는 다시 돌아온 푸름의 계절이 반갑다. 유럽에서는 6월이 돌아오면 라벤더 축제로 6월을 즐긴다. 봄과 여름사이 6월에 피는 꽃들로는 라벤더, 모란, 기생초, 화훼식물로 재배된 양귀비, 접시꽃, 산이 하얗게 덮일 만큼 층층이 하얀 꽃을 피워내는 산딸나무, 한련화, 섬초롱꽃, Jasmine, 달콤한 향이 나는 Sweet pea, 금낭화, 겨울이면 월동도 할 줄 아는 Clematis, 줄기 한 대에 여러 작은 꽃들이 둥그렇게 모여 핀 Allum, 보라 파랑 분홍 흰색 등 여러 색상으로 꽃을 피워내는 Delphinium, 결혼 부케에 많이 사용되는 Astilbe에다 6월 향기에서 빠뜨릴 수 없는 밤꽃이 절정을 이루고 매실 열매도 푸름으로 익어가고, 포도나무도 꽃을 피워내고 향기를 사방으로 뿜어낸다. 꽃이 피고 향기가 번져날 땐 우리 인생들은 환호로 반기지만 꽃이 낙화하고 시들면 왠지 마음이 기울어지기 마련이지만 꽃이 떨어진 자리엔 귀한 결실이 열매로 익어가고 보람의 환희가 기다리고 있기에 인생이란 희극도 아닌 비극도 아닌 것으로 무마되고 만다.
아득하게 흘러가버린 시간도 한 때 피었다 져버리는 한 송이 고운 꽃처럼 결실로 남겨질 씨앗이었던 것을, 강열하게 하루를 태운 햇살도 노을에 실려 사라지는 것을, 이 또한 통속이요 인생 풍경인 것을. 6월과의 만남을 조우나 해후라 하기에는 어쩐지 어색한 것 같다.상봉이란 언어가 한결 자연스레 어울릴 듯 한 것은 그만큼 6월이 일상을 보내기에 마냥 편한 순둥이로 유난스러운데 없는 성품으로 평안을 끼치기 때문인 듯하다. 6월은 창창한 젊음이 표출되고 사뭇 푸름이 전개되는 계절을 열어주었기에 낮음으로 흐르는 물길이 되어, 비움과 내려놓음을 잊지 않고 삶을 그려간다면 탄력을 잃어가는 피부, 눈가에 잡힌 주름, 감각이 느려지는 걸음걸이 마저도 각별한 친숙으로 받아들여질 것 같다.
일에 쫓기고, 비교문화에 쫓기고,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으로서는 6월이 향기로 열리고 있는지에 마음 가기가 쉽지 않다. 만상이 초록 향기에 젖어 드는 유장한 삶에 잠깐이라도 잠겨보는 것이 오히려 불안을 초래하고 빈틈없는 현실이라는 각본에 한 치의 오차 없이 메여 있어야 마음을 안정시킬 수가 있어진다. 내가 내 삶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 흐름이 나를 끌고 간다. 하지만 잠시 자연 속에 나를 맡기다 보면 싱싱한 풀잎 내음도 기억 저편에서 그리움으로 순화 되고 있음을 감사하게 될 것이다. 잊혀진 향취가 도전으로 다가오면서 향기를 남기는 사람으로 남겨질 수 있을까 조바심치기도 했던 것을. 향기를 남기려는 의지와 예술혼이 접목되면 그림, 음악, 글로 행복과 평안을 분출시키게 된다. 이렇게 구상된 작품과 마주하게 되면 분출되지 못한 감성과 자유가 충만한 행복을 만끽하는 게 해줄 것이다.
6월이 베풀어주는 추상적 표현과 감성이 결합되면 색다른 풍경이 되어 일상 속으로 투영될 것이다. 한껏 고조된 감성은 일상 조형감각에 까지도 조화와 균형을 얻게 해줄 것이다. 인생 여정은 늘 그랬었다. 달리거나 주저앉거나. 열정만으로는 이루어 내기가 숨가쁜 것이라 간주해버리며 넘어진 김에 쉬어 가기도 하고 쉬었다 싶으면 마냥 다시 달려왔던 노정이었다. 향기로 열리는 6월이 숨길 수 없을 만큼 반갑고 다정한 친구 같아 반색으로 맞는다. 6월 앞에 다짐을 해본다. 살아온 생의 속도감에 메이거나 안주하지 않으며 모순도 어긋남도 없는 앙상블 매치의 어울림과 조화로움의 지혜를 부단히 익혀가겠노라고. 6월 속으로 생명지킴이 사명을 함께 감당하며 누림을 더불어 공유하자는 뜻으로 새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