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 푸드, 패스트 패션에 이어 패스트 시청의 시대다. 음식에 붙은 ‘패스트’는 빠르게 조리된다는 의미다. 주문하면 바로 먹을 수 있는 음식, 햄버거나 피자처럼 상업적 재판매를 목적으로 대량 생산된 식품으로 건강에 해롭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서비스 속도에 중점을 둔 ‘패스트’가 의류에 붙어 트렌드에 맞춰 신속하게 디자인, 생산, 유통하는 ‘패스트 패션’이 되었다. 유니클로, 자라, H&M 등과 같은 패스트 패션은 저렴한 가격으로 널리 구입되지만 빨리 버려진다.
디지털 시대의 패스트는 무료(free), 애플리케이션(app), 간단한(simple), 시기적절한(timely)의 이니셜을 딴 신조어다.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공짜로 앱을 통해 간단하고 시기적절하게 제공하는 기업을 선호한다는 뜻이다. 모바일 택시 서비스인 우버,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인 넷플릭스 등을 들 수 있다. 우버는 소비자가 원하는 시간에 수수료 없이 앱을 통해 쉽게 택시를 부를 수 있고 넷플릭스는 영화·드라마·TV 등을 스트리밍 형식으로 무제한 제공한다.
콘텐츠 시청에 있어 한 단계 더 나아간 패스트는 ‘광고기반 스트리밍TV’(Free Ad-supported Streaming TV)의 약자이다. 방송 통신 서비스와 콘텐츠 시장에 태풍의 눈이 된 신생 플랫폼으로 플루토TV, 로쿠채널, 삼성TV 플러스, LG채널, 비지오 등이 대표적이다. 이용자가 광고를 보는 대가로 무료 시청이 가능하다. 광고 기반 주문형비디오(VOD)와 TV 실시간 채널(Live TV)이 혼합된 개념으로 운영체제(OS)가 탑재된 스마트 TV를 통해 구독료나 수신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최근 다양한 콘텐츠 플랫폼 증가로 인해 소비자들이 느끼는 구독료에 대한 부담감과 콘텐츠 선택에 대한 피로감이 증가하면서 FAST 서비스가 각광을 받고 있다. 미국 인구의 약 3분의 1이 2027년까지 FAST 시청자가 되어 총 1억1450만 명에 달할 것이라 예측한다. 인사이더인텔리전스의 선임 분석가 로스 벤스는 “FAST는 시청자의 경우 무료이며 로그인할 필요가 없다. 로쿠(Roku) 자체 채널, 삼성TV 플러스, 비지오 와치프리 플러스(Vizio WatchFree+)와 같은 하드웨어 제조업체들의 채널을 통해 FAST 서비스의 접근성이 향상되었다. FAST는 무엇을 시청할지 선택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수동적으로 시청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쉽게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FAST 서비스는 수동적 시청으로 광고에 참여하는 사람이 줄어들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프리미엄 콘텐츠는 일반적으로 주문형 비디오 구독 서비스용으로 제작되지만 FAST는 시청자가 매주 시청할 가능성이 낮은 구작 라이선스 재방송을 제공하려는 경향을 띤다. FAST 콘텐츠는 오리지널 SVOD 콘텐츠보다 시청자 수요가 낮을 수 있다. 그러나 광고 비용을 더 저렴하게 유지하는 데는 도움이 된다.
미국 가구의 95%가 적어도 하나의 스트리밍 서비스를 구독하고 있을 만큼 스트리밍 시장은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넷플릭스는 글로벌 가입자의 지속적인 증가로 매출과 순이익이 성장세를 이어왔음에도 2025년부터 유료 구독자 수를 발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취했다. 프라임 비디오와 애플 TV는 자체 플랫폼을 통해 맥스, 파라마운트+, 코코와(KOKOWA) 등의 플랫폼을 추가하는 기능으로 수익을 올리고 있다. 대부분의 미국 가구가 이미 서비스에 가입한 상황에서 스트리밍 플랫폼은 사용자 기반의 확장보다는 유지하는 전략을 취하는 모양새다.
미디어 리서치 기관 리히트만 조사에 따르면 미국 최대 케이블 TV 회사는 2023년 380만 명 이상의 가입자를 잃었다. 미국 최대의 유료 TV 회사이자 최대 규모의 광역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인 컴캐스트는 200만 명 이상의 가입자가, 2위 기업인 차터는 100만 명 이상이 감소했다.
코드 커팅으로 케이블 TV 서비스가 거의 중단되니 소비자에게는 희소식도 있다. 차터가 스펙트럼 인터넷 고객에게 월 40달러에 90개의 스트리밍 채널을 제공하는 스펙트럼 TV 서비스를 출시했다. 컴캐스트는 선불 인터넷 및 모바일 요금제 뿐 만 아니라 약 40개 채널이 포함된 월 20달러의 스키니 스트리밍 번들 NOW TV를 포함하는 ‘NOW‘ 브랜드의 새로운 제품 시리즈를 발표했다. 디즈니-폭스-워너 브라더스 디스커버리 합작 투자 스트리밍 서비스는 아직 출시일이나 요금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약 40달러 선으로 예상하고 있다.
FAST 서비스가 인기를 얻으니 미국에 사는지 한국에 사는지 헷갈릴 때가 있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 예능 프로그램을 실시간으로 시청하고 그 옛날 그 드라마까지 몰아보기가 가능하다. 넷플릭스, 아마존 프라임, 훌루(디즈니)에 이어 FAST 채널까지 ‘한국 콘텐츠 홍수’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하은선 LA미주본사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