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중국을 향한 견제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첨단 분야의 대중국 수출 통제는 강화되는 추세다. 이달 11일에도 미 상무부는 중국군의 인공지능(AI) 반도체 확보를 지원했다는 이유로 중국 기업 4곳을 블랙리스트(수출 통제 대상) 명단에 올렸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블랙리스트에 올린 중국 업체는 319곳으로 늘었다. 미국을 강하게 압박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제재한 306곳을 이미 넘어섰다.
중국을 향한 압박은 경제 분야에만 그치지 않는다. 바이든 대통령은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대립하고 있는 필리핀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 동중국해에서 중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까지 초청해 사상 첫 3국 정상회의를 가졌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한 3각 동맹 의지를 대내외에 드러낸 것이다.
미국은 영국·호주와의 안보 협력체인 오커스(AUKUS)에 일본이 합류하는 방안도 논의했다. 포위망을 좁히며 중국을 견제하고 나서자 중국은 긴장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중국이 최근 부쩍 러시아·북한과의 동맹 관계를 강화하는 양상도 서방에 대응하기 위한 일환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미국과 서방은 중국 옥죄기를 가속화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중국과의 관계 유지·개선에도 적극적인 모습이다. 미국은 바이든 대통령의 요청으로 2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 간 통화를 나눴다. 그 직후인 4일부터 엿새 동안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중국을 방문해 후속 조치를 이어갔다. 옐런 장관은 중국의 과잉 공급을 지적하며 중국과 팽팽하게 맞섰지만 리창 총리, 허리펑 부총리 등 고위급 인사들과 연쇄 회동하며 관련 분야의 해법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해나갔다.
유럽연합(EU) 역시 최근 전기차 보조금 문제를 둘러싸고 중국과 날 선 대립을 벌이고 있으나 독일·프랑스·네덜란드 등 주요 국가는 중국과 긴밀한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14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대규모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중국에 도착했다. AFP통신은 숄츠 총리가 리 총리, 시 주석 등과 회담하며 중국과의 경제 교류를 이어갈 의지를 내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을 향한 디커플링 요구가 거세지만 숄츠 총리는 출국 전 “중국은 여전히 독일에 정말 중요한 경제 파트너”라며 경제협력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호주도 중국과의 경제 관계 강화를 위해 올 6월 리 총리를 초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3년 만에 호주산 와인에 대한 보복 관세 문제를 해결한 데 이어 호주산 활 랍스터 수입 금지도 풀 것을 기대하고 있다. 중국은 2020년 당시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가 코로나19의 기원에 대한 조사를 촉구하자 석탄과 보리·면화·쇠고기·유제품 등 호주산 제품을 공식·비공식으로 수입 금지했으나 최근 양국 관계가 개선되며 이를 잇달아 해제했다.
중국과 미국·독일·호주 등이 교류를 확대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각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외국인 투자가 급감하고 있는 중국은 외자 유치에 목말라하면서 수출입 확대에도 절실한 입장이다. 해당 국가 역시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될 경우 자국 경제에 미칠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외교·안보 분야에서 중국과 때로는 대립할 수밖에 없지만 자국 기업을 지원하고 중국과의 경제 교류를 활발하게 하는 것 역시 정부의 몫이다.
이렇듯 복잡하면서도 미묘한 국제 정세의 변화는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굴욕적으로 끌려가지 않으면서 할 말은 하는 ‘당당한 외교’를 보여줘야 한다. 이와 함께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인 만큼 실리를 챙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국가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는 싫더라도 더 자주 얼굴을 맞대고 대화해야 한다. 다음 달 말께 서울에서 개최될 예정인 한중일 3국 정상회의는 그 시험대가 될 것이다. 총선 이후 쇄신에 나서는 윤석열 정부가 새로운 차원의 대중 외교를 펼치기를 기대한다.
<김광수 서울경제 베이징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