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한복음 1:1). 말씀은 곧 성경입니다. 성경은 말씀입니다. 이 단순하고 명료한 것이 성경의 큰 흐름입니다. 이 큰 흐름이 성경의 대변혁의 주요골격입니다.
구약의 시작인 창세기 1장 1절의 천지창조의 시작("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과 요한복음 1장 1절의 "태초"는 동일한 <하나님의 역사의 개입>입니다. 중요한 것은 태초에 일어난 천지창조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역사 가운데 나타나신 예수님의 개입이란 사실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한복음 1:14). 구약과 신약을 총칭하여 성경이라 부르고 또한 말씀이라 부릅니다.
일반적인 성경상식은 구약은 율법을 신약은 은혜를 강조한다고 생각하지만 상식의 가장 위험한 요소는 피상성입니다. 이 피상성이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살고있는 현대 크리스천의 치명적인 위험요소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제거하고 폐지하러 이 세상에 오신 분이 아닙니다(마태복음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율법의 불충분하고 미흡한 부분을 완성하러 오신 분입니다. 예수님의 오심과 이 지상사역, 그리고 부활 승천하시는 순간까지 단 한 순간도 예수님의 곁을 떠나본 적이 없는 예수님의 제자이면서 사도인 요한의 예리한 통찰력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장에서 성경의 대변혁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그리고 그 역사의 대변혁을 일으키신 장본인인 예수님이 이 세상에 가져오신 그 대변혁이 무엇인지를 한 절의 성경구절에서 명료하게 밝힙니다. 요한복음 1장 17절입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사도 요한이 대명천지에 밝힌 예수님의 다른 이름 중에 이 시대의 역사를 바꿀 수 있는 역사의 대변혁의 본체이신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은 "은혜와 진리"입니다. <은혜와 진리>는 예수님과 동일합니다. 율법의 완성이 바로 은혜입니다. 은혜는 헬라어로 카리스입니다. 은혜는 선물입니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허리를 구푸려 고개를 숙인 사건입니다. 은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신 사건, 온 인류의 죄를 단 번에 속량하시기 위해 피흘리심으로 우리가 받게 된 <선물의 구원의 축복>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은혜가 없이는 결코 죄를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율법의 완성으로 오셔서 이루신 "은혜의 생산성"을 일회적으로 끝나지 않고 연속적으로 끊임없이 주어짐에 대하여 "충만"이라는 <말씀의 역동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 예수(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요한복음 1:16).
지금의 시대는 귀로만 듣고 만족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현장감을 즐기는 시대입니다. 예수님은 시대를 앞질러 가셔서 우리에게 이미 말씀이 육신이 되셔서 성육신하므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귀로 눈으로 손으로 깨달아 알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본고로 나를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말씀하셨습니다(요한복음 20:29).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준 자연계시가 있습니다(시편 19: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이 자연계시를 통하여 하나님을 보여주신 사건보다 더 직접적이고 확실하신 것은 예수님 스스로가 말씀이심을 밝힌 사건 성육신하심은 가장 큰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입니다. 요한은 "은혜와 진리"이신 예수님이 나타내신 사건을 다음과 같이 증언합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한복음 1:18).
역사의 근간을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이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발판으로 삼으면 우리는 죄에 속박당할 이유도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를 잃어버릴 염려가 전혀 없습니다. <은혜와 진리>이신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십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장 32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