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이규 레스토랑
김성희 부동산
첫광고

[정숙희의 시선] 여자의 성, 라스트 네임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4-03-13 17:44:47

정숙희의 시선, LA미주본사 논설실장

권순상 노흥성 부동산 470-218-6136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결혼하면 으레 여자가 남편 성을 따르는 것이 미국의 관습이지만, 오래전 결혼했을 때 나는 성을 ‘반’만 바꿨다. 즉 회사에서는 원래의 성을 그대로 쓰면서 가족서류에서만 남편의 성을 따른 것이다. 당시 이미 기자였고 신문에 정숙희 기자로 나가고 있었으니 갑자기 이를 바꾸는 것이 더 이상했기 때문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선배와 동료 여기자들 거의 모두가 신문 바이라인에는 자신의 성을, 가족의 라스트네임으로는 남편의 성을 사용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때 우리가 무슨 페미니스트라든가 여권신장을 위해 그랬던 것은 아니다. 대부분 한국서부터 기자생활을 해왔는데 미국에 오니 가족이 하나의 성을 쓰는 것이 보편화돼있으므로 편의상 둘 다 모두 차용한 ‘이중생활’을 하게 된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결혼해도 여자의 성이 바뀌지 않지만 미국을 비롯한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아내와 자식이 아버지의 성을 따르는 부성주의가 오랜 전통이고 관습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미국에서 이 같은 문화가 서서히 바뀌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남편의 성을 따르지 않는 여성이 많아진 것은 물론, 남편이 아내의 성으로 바꾸는 경우도 있고,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성이 아닌 어머니의 성을 물려주거나 아예 부모의 성을 합쳐서 새로운 라스트네임을 만드는 가족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퓨 리서치가 지난해 2,740명의 기혼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결혼 후 남편 성을 따르는 여성은 79%, 자신의 성을 유지하는 여성 14%, 두 사람의 성을 (하이픈으로 연결해) 함께 사용하는 가정이 5%, 두 라스트네임의 알파벳을 섞어 새로운 성을 지은 가족은 1%였다. 그리고 남자들 중에서 아내의 성을 따른 사람이 5%나 됐다.

자신의 성을 계속 쓰는 여성은 나이가 젊을수록, 학력이 높을수록, 진보적이고 민주당 성향일수록 그 비율이 높았다. 그리고 결혼을 늦게 하는 여성들이 자기 성을 지키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이유는 오랫동안 커리어를 쌓아온 만큼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이름이 중요한 자산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자기 소유의 집과 자동차 및 기타 재산을 갖고 있는 고소득자 여성이 이름을 바꾸게 되면 소유권과 면허, 보험 상의 이름도 전부 바꿔야하니 불편함이 우선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 

미씨 유에스에이에서 라스트네임에 대한 갑론을박 중에 이런 글이 있었다. “결혼하면서 제 성 안 바꿨어요. 솔직히 우리 부모님께서 열심히 키워주셔서 의사 됐는데 신랑 이름으로 하기 좀 싫더라구요.” 조금 당차고 얄밉긴 해도 이해 못할 코멘트는 아니다. 이런 반응도 있었다. “미국에서 엄마와 아이의 라스트네임이 다르면 이혼이나 재혼가정으로 오해해서 불편하다고들 하는데 전혀 불편한 거 없어요. 누군가 바꿔야한다면 남편보고 제 성으로 바꾸라고 할 거에요.” 

사회가 많이 변했으니 이런 변화들은 당연하다. 50년 전만 해도 남녀가 결혼하여 아이들을 낳고 기르는 핵가족이 ‘정상적인’ 가정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현재 미국에 이런 정상적인 가족은 17.8%에 지나지 않는다. 반대로 혼자 살고 있는 싱글 가구가 전체의 28%, 한 번도 결혼하지 않은 성인은 34%나 된다.(2021년 인구조사국 통계)

이와 함께 성 정체성이 다양해졌고, 결혼과 가정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달라졌으며, 가정의 형태도 계속 진화하며 분화하고 있다. 

‘남녀의 결합’이었던 결혼은 이제 개인의 선택에 따라 결혼하지 않거나, 늦게 결혼하거나, 결혼해도 아이를 갖지 않거나, 여자끼리 또는 남자끼리 결혼하여 아이를 입양 또는 대리모 출산하거나 등등 한두 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새로운 패밀리의 모습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또 전통적인 여성성과 남성성, 어머니와 아버지 역할에 대한 기대가 많이 허물어졌다. 여성이 돈을 더 많이 벌거나 가장인 가족도 많고, ‘집안의 기둥인 아버지’보다 이혼 후 양육비도 내지 않고 나 몰라라 하는 남성이 많아진 상황에서 왜 꼭 여자가 남자의 성을 따라야하고 왜 자식에게 아버지의 성을 물려주어야하는가 하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뉴욕타임스에 “그들은 왜 아내의 성을 택했나”라는 기사가 나온 적이 있다. 결혼하면서 자신의 성을 버리고 아내의 성을 라스트네임으로 택한 남편들 이야기다. 

의외로 몇몇 이유는 이름의 발음과 어감 때문이었다. 한 남성은 자신의 라스트네임이 길고 발음하기 어려워서 상대적으로 짧고 쉬운 아내의 성을 택했다고 했다. 또 다른 남성은 자랄 때부터 너무 특이한 자신의 성이 싫었다며 아이들에게는 평범한 성을 물려주고 싶어서 아내의 성으로 바꿨다고 했다. 한 커플은 아내가 남편의 성이 싫다고 해서 그녀의 성을 패밀리네임으로 정했다고 했고, 또 다른 남성은 아버지를 본 적도 없이 자랐는데 아내의 가족에게 아들이 없는 것을 보고 미련 없이 그 가족의 일원이 되기로 했다고 고백했다.

한국 문화권에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이야기들이다. 족보와 본관을 따지고, 어떤 일을 절대 하지 않겠다고 맹세할 때 “내 성을 갈겠다”고 하는 한국인들에게 남자가 여자 성을 따른다는 것은 “손에 장을 지지는 것”과 같은 일이 될 것이다. 

이름은 정체성이다. 결혼을 떠나, 성 평등 이슈를 떠나, 한국과 미국의 출신지를 떠나, 자신을 누구로 규정하고 싶은지 한번쯤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35년 전, 신문에 이름이 나오는 기자가 아니었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정숙희 LA미주본사 논설실장>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행복한 아침]   인생이 다 그런 거지

김 정자(시인 수필가)   건강하고 만사가 편안하게 잘 풀릴 때, 남의 힘든 불행을 엿보며 무심코 내뱉던 말 ‘인생이 다 그런 거지 뭐, 잘 될 거야 잃은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

[신앙칼럼] 중독을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붕괴와 고립에서 거룩한 위로로

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Blessed Are Those Who Mourn Addiction: From Collapse and Isolation to Divi

[재정칼럼] 천경태의 은퇴를 지키는 쇼셜시큐리티 인사이트 - 은퇴와 생활의 기초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제도 읽기 (16)
[재정칼럼] 천경태의 은퇴를 지키는 쇼셜시큐리티 인사이트 - 은퇴와 생활의 기초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제도 읽기 (16)

사회보장국의 부정급여 방지법(PIIA) 준수 보고서와 우리의 은퇴 방어 전략올바른 자산 및 소득 보고가 은퇴 연금과 복지 혜택을 지키는 지름길입니다 천경태 (금융전문가)  공식 발

[추억의 아름다운 시] 길

마종기 시인 높고 화려했던 등대는 착각이었을까.가고 싶은 항구는 찬비에 젖어서 지고아직 믿기지는 않지만망망한 바다에도 길이 있다는구나.같이 늙어 가는 사람아,들리냐. 바닷바람을 속

[수필] F코드, 내 인생의 굳은살
[수필] F코드, 내 인생의 굳은살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친구에게 기타를 가르쳐주기로 했다. 희끗희끗한 머리칼 아래로, 투박해진 손끝으로 지판을 꾹 누르며 애쓰는 친구의 모습이 자못 진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  주택보험에서 보상되지 않는 사고들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 주택보험에서 보상되지 않는 사고들

최선호 보험전문인 새 자동차를 살 때 딜러에 가면 기본 모델만 살 것인지, 여러 옵션을 추가할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옵션을 하나둘 넣다 보면 처음 생각했던 가격보다 훨씬 비싸지는

[애틀랜타 칼럼] 논쟁에서는 이기는자가 없다

[법률칼럼] ‘신용’보다 ‘신원’…미국 금융심사의 새로운 기준

케빈 김 법무사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대출이나 신용카드를 신청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신용점수(Credit Score)였다. 점수가 높고 소득이 안정적이라면 승인

[행복한 아침] 별들의 여름은

김 정자(시인 수필가)   여름 날, 밤이 깊어지면 하늘을 올려다 보던 일이 일상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유년 시절 가족이 모여 저녁밥도 마당 평상에서 먹기도 하고 시원한 수박을 나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 미국 독립선언문의 정신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 미국 독립선언문의 정신

최 모세( 고전 음악·인문학 교실)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 제250주년을 맞게 된다. 미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으로서 미국의 건국이념인 독립선언문의 정신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