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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칼럼] '겸손한 기부'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4-03-07 12:01:10

뉴스칼럼,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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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패러다임과 규모의 획기적인 변화로 억만장자들이 속속 탄생하고 있는 가운데 이들에 의한 기부 액수 또한 이전에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커지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 내 대학들의 기부담당 행정가들의 조직인 CASE 조사에 따르면 2023 회계연도에 대학들이 받은 기부금 총액은 무려 580억 달러에 달했다. 이 가운데 기부액이 1억 달러를 넘은 경우만도 11건에 달했다. 이제 웬만한 액수의 기부는 별 다른 뉴스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그 규모가 커진 것이다.

그런 가운데 2월 말 나온 한 대학에 대한 기부 소식이 미국사회를 뜨겁게 달궜다. 억만장자 투자가였던 남편으로부터 거액의 유산을 물려받은 뉴욕 소재 앨버트 아인슈타인 의대의 노교수 루스 갓츠먼(93)이 재학생들의 학비를 영구 면제해주는데 사용해 달라며 자신의 대학에 무려 10억 달러를 기부한 것이다.

10억 달러는 미국 대학이 받은 기부금 가운데 역대 3번째로 큰 액수이다. 기부를 받은 앨버트 아인슈타인 의대는 뉴욕시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으로 꼽히는 브롱스에 위치한 대학으로 미국 내 의대 랭킹에서 40위권에 위치한다. 이 대학 학생들의 절반가량은 20만 달러가 넘는 빚을 안고 졸업을 한다.

갓츠먼의 기부는 액수도 액수지만 기부가 이뤄지기까지의 스토리 때문에 더욱 화제가 됐다. 그녀는 기부에 따른 어떤 대가도 원치 않았다. 대학에 천문학적인 기부를 할 경우 기부자의 이름을 따 교육기관의 명칭을 개명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코넬대 의대는 2013년 시티그룹 CEO였던 샌퍼드 웨일로부터 1억5,000만 달러를 기부 받고 이름을 ‘웨일 코넬 의대’로 수정했다. 또 미국에서 가장 돈 많은 여성 가운데 하나인 줄리아 코크로부터 7,500만 달러를 받은 플로리다 웨스트팜비치의 한 병원은 이름을 ‘줄리아 코크 간호 케어센터’로 바꿨다.

하지만 갓츠먼은 “이미 아인슈타인이라는 대단한 이름이 있다”는 이유를 들어 학교 이름 개명을 고사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자신의 기부 사실을 알리는 것조차 꺼려했다. 학교 측이 “어떠한 인정이나 치장 없이 그저 타인의 복지를 위해 전적으로 헌신한 사람이 있는 차원에서 이름을 밝히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기부를 장려하는 효과가 있다”고 설득한 끝에 겨우 그녀의 이름을 밝힐 수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갓츠먼의 태도와 관련해 뉴욕타임스는 ‘겸손한 기부’라고 지칭하면서 거액의 기부를 일종의 투자로 여기는 ‘거래주의’가 횡행하는 세태 속에서 한층 더 빛이 난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반유대주의 대응에 미온적이라는 이유로 펜실베이니아 대학과 하버드 대학 총장에 사임 압력을 가해 결국 물러나게 한 거액 기부자들과 비교하기도 했다.

갓츠먼의 기부는 날로 심각해지는 미국사회 의사부족 문제와 관련해서도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미 의료협회에 따르면 미국의 의사 부족은 향후 10년 동안 최대 10만 명에 달할 수 있으며 특히 일부 진료과목의 경우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지역의료와 관련해 아주 중요한 가정의학과의 경우에는 레지던트 자리가 채워지지 않는 경우가 빈번한 반면 돈을 잘 버는 마취과나 성형외과에는 빈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쏠림 현상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게 바로 학자금 빚이다. 그런 만큼 학자금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 주면 돈 되는 분야로 몰리는 현상이 조금은 완화되지 않겠느냐는 희망 섞인 관측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기부에는 등급이 있을 수 없다. 액수의 다과와 동기를 떠나 남을 돕는 데 쓰이는 기부는 모두가 똑같이 소중하다. 그러나 갓츠먼의 경우처럼 그 어떤 공명심도 찾아볼 수 없는 겸손한 기부 소식을 접할 때 한층 더 감동 받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만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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