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유창 목사(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심리학자 밀러 박사는 “당신은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가?”라는 아주 중요한 물음을 이 시대에 던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시대의 <가치, 자원, 목표>에 대한 예리한 물음임과 동시에 <행복에 대한 자체 진단기(診斷機)>입니다. 오늘 21세기의 사람이 아닌, 이천 년 전의 사람을 우리는 <어제의 사람>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시대의 사람을 <내일의 사람>이라 부릅니다. 이것은 단순히 시간의 흐름이 그 측정기준이라 볼 수 없는 신묘막측(神妙莫測)함의 기준이 있습니다. 그것은 밀러박사의 말대로 <목표>입니다. 목표가 분명하지 못하면 우리 인생의 가치, 삶의 원동력,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명확한 인생궤도(人生軌道) 방향설정이 불투명해지는 것입니다.
빌립보서를 기록한 저자는 사도 바울입니다. 바울은 분명히 이천 년 전의 사람으로서 시간적으로는 <어제의 사람>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나, 지금 빌립보 감옥의 영어(囹圄)의 신세임에도 불구하고 감옥 밖의 자유인들에게 그리고, 언어기법의 시제가 과거형이 아니라 미래형을 사용하여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지금 이 시대의 사람처럼, 그리고 앞으로 미래를 향하여 살아가야 하는 미래의 사람 즉 <내일의 사람>처럼 말을 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3-14).
바울이 <어제의 삶>에 연연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전 세대를 아우르는 메시지의 핵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솟아오름>에 있습니다. 아침에 해가 솟아오르는 것처럼, 밤에 달이 솟아오르는 것처럼 이 솟아오름의 힘을 이 말씀의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이 명확한 목표가 있었기에 그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수님의 이미지 형상 그대로 신묘막측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이 <솟아오름의 힘의 근원>이 어디에서 왔을까? 그것은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서론인 마태복음 5장의 결론부분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완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완전하라”(마 5:48). 내일의 사람의 목표설정 기준은 목표함량(目標含量) 미달이 되어서도, 함량 초과로 인한 과유불급(過猶不及)으로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이 되어서도 아니 됩니다. 그러므로 목표의 함량기준이 어디에, 누구를 향하여야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고 신중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기준을 “하나님 아버지”에 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의 뜻은 <솟아오름>이 <꿈>과 <희망>을 의미하는 것일진대, 어느 정도까지 어떤 수준까지 <솟아오름>이 있는가? 바로 이 기준을 예수님의 말씀표현대로 하자면 “완전하라!”입니다. 불완전한 것은 이루지 못하는 목표의 실패를 가져오게 될 것이고, 불분명한 것은 목표의 방향이 불투명한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바울은 비록 죄수의 신분, 캄캄한 상황이었음에도 그가 <솟아오름>의 힘 있는 메시지를 그 옛날에도, 그 이후인 오늘에도,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도 관통할 수 있는 시대를 초월한 명 설교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목표가 <하늘의 하나님>에 이르기까지 원대한 그림의 목표설정이 있었기에 그리고 그 모든 목표가 “푯대를 향하여”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이 부르시는 부름의 상”이 눈에 보였기 때문입니다.
없는 것을 잡는 것은 허황된 것이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실존의 대상을 붙잡는 것은 결코 허황되거나 그 어떤 오류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예수님 안에서 “부름의 상”을 야고보 사도는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말씀 속에서 “생명의 면류관”이라 하였습니다(약 1:12). 이 부름의 상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쓴 편지에 말한대로 “우리는 썩지 아니할 관을 얻고자 함이라”(고전 9:25). 내일의 사람은 내일의 꿈과 비전을 가진 사람입니다. 현실이 상황이 아무리 힘 들어도 하나님이 완전하신 것처럼 완전한 <솟아오름>의 푯대를 향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