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원(애틀랜타 거주)
십여 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한국 드라마와 케이팝과 트로트 그리고 한국말 배우기가 파도를 타고 현해탄을 건너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왜 이들이 한류문화에 그토록 열광하는 것일까? 그들이 하는 말을 자세히 들어보면 대체적으로 한국의 드라마는 마치 자석처럼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는 강한 흡인력(magnet)이 대단히 매력적이라고 하며 케이팝을 들으면 그저 마냥 신난다고 말한다. 나는 이런 신바람이 도대체 어디서 유래한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는데 거기에는 풍류라는 우리 민족 특유의 문화 목록(cultural inventory)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흔히 우리 민족은 한 많은 민족이라고 한다. 한 많은 대동강, 한 많은 미아리 고개,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 등등 우리나라의 가곡이나 설화에는 한이란 단어가 수없이 등장한다. 인기가수 조용필이 특유의 가냘프면서도 폭발하는 듯한 음성으로 “한 많은 이 세상 야속한 님아 정을 두고 몸만 가니 눈물이 나네” 를 듣자면 왠지 모르게 애잔한 기분이 든다. 여기서 우리는 지금 전 세계인들을 매료시키고 있는 한류와 한(恨)의 관계는 뗄레야 뗄 수 없는 마치 바늘과 실의 관계로 엮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가 한 많은 일본을 상대로 월드컵 축구 결승전을 한다고 예상해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한(恨) 이란 글자는 왼쪽에 마음 심(心) 이란 부수와 오른쪽에 비수로 찌르듯 응시한다는 뜻을 가진 간(艮)이 결합해서 만들어진 형성자이니 “비수로 찌르듯이 아픈 마음”을 뜻하는 것이다. 고은 시인은 한이란 희망의 감정이나 꿈꾸는 감정이 아니라 그것들을 모두 포기한 후 체념의 상태에서 드러나는 무아(無我)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그것은 가장 높은 경지의 무(無)에 이르는 국민정서라고 하는데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 민중의 가슴에 갈무리해온 민족의 혼이라고 할 수 있다. 한(恨)의 유래는 첫째 조정래 작가가 언급한 우리민족 5천 년 역사에 966번의 외세 침입으로 인한 극심한 박탈감으로 맺힌 한, 둘째 고구려와 백제 패망 이후, 셋째 지배층의 착취로 인해서 민중들이 받은 고통으로 인해 맺힌 불만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제 식민지배에 대한 극도의 저항의식이 함축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민족에게는 첩첩이 쌓인 한을 푸닥거리를 통해서 무당이 외부의 신을 끌어오거나 자신이 탈혼을 한 후 다른 세계의 신과 접신을 해서 지상의 문제를 풀어줄 무당이라는 중재자가 필요 했던 것이며 질서 이전의 본능의 세계로 귀향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유대인들이 아시리아 그리고 바빌로니아와 같은 강력한 제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생활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긴 한 후 바빌로니아로 끌려갔고 또 기근으로 인해 애굽으로 이주해서 노예로 전락했을 때 그들의 맺힌 한을 한방에 풀어줄 수 있는 절대적인 신 야훼를 창조한 것과 같은 멘탈리티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우리 민족의 한은 예언자적인 의지가 아닌 샤머니즘의 발로였다. 샤먼(Sherman)이란 산스크리트어로 귀신을 쫓아내고 아픈 곳을 낫게 해주는 검은 옷을 입은 제사장이란 뜻이다. 무당은 곧 제정일치 시대의 군장이었다. 신라의 2대 왕은 남해 “차차웅”이라고 불렀는데 차차웅은 신라인들이 무당을 부르던 말이었다. 샤머니즘의 제도적 유래는 신라 말의 대학자인 최치원이 쓴 “난랑비서문”에서 엿볼 수 있다.
“국유현묘지도 왈 풍류(國有 玄妙之道 曰 風流)” 즉 우리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말하기를 풍류라고 한다. 그리고 다음 줄에는 실내포함삼교(實乃包含三敎)라고 되어있는데 풍류라는 것은 유교와 불교 그리고 선도(仙道) 3교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다음 줄에 있는 접화군생(接化群生)은 우리 민족의 어진 성품을 뜻하는데 자비로서 초목이나 동물까지도 덕을 베풀어 함께 즐기고 기뻐하게 한다는 심오한 철학이며 그 사상이 고스란히 신라의 화랑으로 전수되었다. 샤머니즘은 원래 바이칼 호수 주변에 살던 몽골계통의 브리야트 족이 섬기던 종교인데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1만5천 년 전 베링해협을 건너 북미로 이주할 때 가지고 왔으며 지금은 오로지 한국만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몽골족은 우리와 4촌 간이고 티벳의 장족들은 8촌 간이다.
작가 김동리는 풍류의 근원은 샤머니즘이라고 했고 그 대표적인 소설이 김동리의 무녀도이다. 모든 종교는 샤머니즘적 충동에서 출발한 것이라는 사실에 거의 모든 종교학자들은 동의한다. 미당 서정주 시인은 무속을 우주와의 소통이며 거대한 무의식이라는 바다와의 교감이라고 했다. 특히 우리민족의 심성에는 샤머니즘과 유교 불교 그리고 기독교가 마치 계단식으로 중첩되어 있으며 상황에 따라서 편리하게 접목하는 마치 하이브리드 식 종교관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무당을 그냥 유치하다고 무시할 게 아니라 우리민족의 소중한 문화 유산으로 잘 보존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샤머니즘에는 21세기를 인도할 엄청난 문화적 콘텐츠가 담겨져 있다고 김동리 작가는 말한다. 샤머니즘은 곧 풍류라고 말할 수 있으며 풍류(風流)는 곧 신바람(enthusiasm)또는 멋(chic)이다. 영어로 문장 전체를 해석하라고 한다면 나는 “Blow like wind, flow like water” 라고 해석 하고싶다. 바람은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예측불허의 자유로운 운행을 상징하며 물은 모든 것을 보듬어주고 살리는 생명을 상징한다.
우리의 선조들은 “우리네 살림살이는 말도 많네~ 쾌지나 칭칭나네”를 부르며 장구한 세월동안 한(恨)을 삭이는 과정에서 그것을 아름다운 예술로 승화시켜 온 것이며 그런 민족의 DNA가 지금 폭발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무속을 심도 있게 연구한 이화여대의 최준식 교수는 한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가지의 기적을 이루어 냈는데 이제 제3의 기적은 문화강국이 되는 것이라고 하면서 한류열풍이 그걸 입증하고 있다고 한다. 2003년도에 대장금이 세계인들을 열광시켰고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지구를 한바탕 흔들어 놓았으며 BTS가 전 인류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고 원더걸스가 Nobody Nobody로 동양인 최초로 빌보드 차트에 올랐었다. 그 저력은 바로 한국인들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신기(ecstasy)이며 춤과 노래를 즐기는 샤머니즘적 기질이라고 최교수는 말한다. 요즈음 미스터 트롯과 미스 트롯 그리고 현역 가왕 등의 프로그램을 보면 젊은이들이 뿜어내는 신기는 참으로 기가 차다. 우리야 말로 민족의 한을 반면교사로 삼아서 남의 나라를 절대 침탈하지 않고 경제대국의 꿈을 이루어 낸 선한 민족이요 참으로 풍류를 즐길 줄 아는 멋진 민족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