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희 목사
어느 급성장하고 있는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부교역자들이 사무실에 모여서 매주 늘어나는 새 신자들의 교족을 정리하고 심방 계획을 짜느라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일에 시달리던 한 부목사가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전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나온 혼잣말이었습니다. “에이, 제기랄… 왜 하필 우리 교회로만 이렇게 몰려오고 야단들이야…”
흑인들이 원주민인 한 선교지에서 사역하던 선교사가 전해 준 일화도 이와 유사한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선교사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다가 원주민 때문에 선교 사역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현실이 보고되었습니다.
그때 어느 선교사가 자신도 모르게 무심코 내뱉은 말이 몇 사람의 선교사들을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에이, 그 깜둥이 새끼들이 지랄이야….”
두 사람 모두 무의식적으로 한 말이었지만 그것은 평소에 그들이 어떠한 마음으로 섬기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들은 영혼을 섬긴 것이 아니라 일을 섬기고 있었으며 하나님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선교 계획상의 목표를 추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그 일이 고상한 하나님의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지 않는 것은 밥벌이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신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에게 늘 말합니다. “당신들이 부교역자처럼 섬기는 한 섬기는 과정을 통해서 영원히 하나님을 만나 뵙지 못할 것입니다. 섬기는 기술은 늘지 모르지만 섬김의 동기 자체의 변화를 경험하는 영적 변화는 꿈꾸지 마십시오.”
거룩한 기도의 사람들은 남다른 방법을 소유했기 때문에 거룩한 기도의 삶을 살게 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사람 자체가 달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필요로 하고 계십니다. 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더 많은 방법이나 더 좋은 조직, 인간이 개발해낸 신기하고 기발한 성공의 이론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교회에 필요한 사람은 성령이 쓰실 수 있는 사람, 즉 마음이 하나님께 고정되고 기도에 바쳐진 사람입니다.
성령은 방법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으시고 사람을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영은 기계 위에 임하지 않고 인격을 가진 사람 위에 부어집니다. 계획을 사용하지만 계획 자체에 기름 부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계획하는 사람 위에 부어지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를 보십시오. 한번의 기도로 위대한 역사를 일으킬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그의 마음에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당연한 확신이었는데 다른 사람에게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아무리 족속을 쳐서 멸하고자 하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사람들은 적당한 대답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아주 간단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멈추게 하시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이처럼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통하여 실현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다한 명령형의 짧은 기도는 위대한 능력을 불러왔습니다. 해는 멎었고 원수들을 진멸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성취되었습니다. 이러한 놀라운 기도의 능력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그것은 단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앞에서 살펴 보았습니다.
우리가 이 사건을 보면서 단지 그러한 기도의 능력을 나도 소유하고 싶다고만 생각한다면 그것은 “사모함”이라는 이름의 탐심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는 그런 놀라운 기도의 능력을 소유하기까지 실로 오랜 세월을 기도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기도 속에서 서서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의 깊이를 경험하며 영적인 경험을 쌓아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