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은 한국에서만이 아니라 LA, 뉴욕 등 미국의 50개가 넘는 대도시 영화관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몰아가고 있다. ‘서울의 봄’에 대한 열풍은 80년대를 살아온 이민 1세대는 물론 한국의 정치상황에 무관심했던 한인 1.5세나 2세 그리고 미국인들에게까지 크게 확산되고 있는 양상이다.
당시 방송국 현업 PD로 일하면서 전두환 군부의 혹독한 언론탄압을 겪은 내게는 지금도 너무나 생생하게 떠오르는 장면들이다.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한 후 지긋지긋한 긴급조치가 해제되고 유신체제가 끝났을 때는 마치 1968년 체코에서 있었던 ‘프라하의 봄’처럼 한국에서도 드디어 민주화, 자유화가 이루어지는 것인가 하는 ‘서울의 봄’을 꿈꾸게 되었었다.
그러나 전두환 세력이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켜 또다시 군부의 집권야욕을 드러내자 대학생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였고 전두환은 1980년 5월17일 비상계엄을 전국적으로 확대한데 이어 광주 5.18 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서울의 봄’은 6개월 만에 막을 내렸고 나도 그해 7월 방송국을 떠났다.
그로부터 43년이 지난 오늘 왜 한국인들은 영화 ‘서울의 봄’에 열광하는가? 그것은 영화의 완성도도 좋았지만 지난 시절 독재정권의 죄악상과 그것을 바로잡아나간 민주화 운동을 잘 알지 못했던 젊은이들이 영화를 통해 현대사를 학습하면서 당시 신군부 세력과 오늘날 일부 검찰 세력들이 무한 권력욕에 취해있다는 점이 너무 흡사한 것에 흥미를 느낀 때문이라고 한다.
새해 벽두부터 국민을 향해 ‘이권과 이념에 기반을 둔 패거리 카르텔을 반드시 타파 하겠다’ 며 엄포와 독설만 쏟아내는 대통령을 보면서 국민들은 그 놀라운 적반하장에 절망하고 있다. 보수언론들마저 연일 ‘제발 민심의 뜻을 따르고 부인문제를 해결하라’고 다급한 소리로 외치고 있지만 당사자는 한사코 모르쇠로 버틴다. 이미 ‘공정과 정의’의 팻말은 발밑에 깔아뭉개고 있는지 오래되었다.
올해는 세계 76개국이나 되는 나라에서 대선 또는 총선이 있다고 하는데 그 중에서 올 4월에 있을 한국 총선과 11월에 있을 미국 대선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미국은 ‘다시 바이든이냐’ 아니면 ‘또다시 트럼프냐’를 놓고 한국보다 더 심하게 피 터지는 싸움판을 벌이기 시작했다.
모쪼록 미국시민에게는 능력 있는 지도자, 이웃나라에게는 존경받는 리더십이 세워지기를 바란다. 한국은 한미일 동맹 강화를 내세우지만 옛날 정초에 있었던 일화처럼 세배하러간 어른 앞에서 노래만 부르고 정작 세뱃돈은 못 받은 격은 아니었는지 돌아보고 트럼프가 귀환했을 경우도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한국이나 미국의 정치에 통합과 상생이니 노블레스 오블리주니 하는 말은 사라지고 증오와 적대와 혐오만이 판을 치는 험악한 세상에서 김대중 대통령 탄생 100주년을 보냈다. 평생을 민주주의와 서민경제, 민족의 통합을 위해 사셨던 김대중 대통령이라면 이 난국을 어떻게 해결했을런지를 생각해본다.
‘서울의 봄’은 더 이상 허망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이 봄이라면 미국은 가을이 아름답다. 11월 초에는 영화 ‘Autumn in New York’에서 본 뉴욕 센트럴파크를 비롯해 동부 해안의 여러 도시와 애팔래치아 산맥기슭이 온통 단풍으로 곱게 물든다. ‘워싱턴 DC의 가을’-그 아름다운 가을에 미국은 어디에 있을까.
<김용현 한민족평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