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익숙하고 친숙해서 미처 그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 특별함을 알아채고 깜짝 놀라게 되는 건 그가 떠나고 난 뒤, 더 이상 익숙하고 친숙할 수 없어진 다음이다.
마이클 잭슨이 살아있었을 때 특별히 그의 팬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의 음악과 춤, 그 강렬한 비트를 좋아했고 음반도 몇 장 갖고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딱 그 정도,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2009년 6월, 그가 50세 나이로 숨졌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머리를 한 대 크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말도 안 돼!” 소리가 저절로 터져 나왔다. 돌아보니 그는 우리 시대 최고의 가수이자 댄서였으며 퍼포머였다. 이 세상 누구를 갖다 대어도 그를 능가할 무대공연자는 영원히 찾을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섬세한 미성과 폭발적인 가창력, 화려한 무대매너와 카리스마, 특이하고 획기적인 춤, 조각 같은 실루엣, 모자와 장갑과 흰 양말로 자신만의 이미지를 창조해낸 문화아이콘….
특별히 나를 사로잡았던 건 그의 ‘우아함’이었다. 마이클 잭슨은 팔다리가 유난히 길고 손은 엄청나게 컸다. 그 팔이 펼치는 직선과 곡선과 타원, 큰손으로 표현해내는 감정이 늘 다양하고 우아했다. 가늘고 긴 몸체를 떠받치는 다리가 신들린 듯 움직이며 스텝을 밟을 때면 이건 신의 경지, 곧바로 빠져들어 매혹되기 마련이었다.
그가 죽고 나서 몇 달 후 다큐멘터리 영화 ‘디스 이즈 잇’(Michael Jackson‘s This Is It)이 나왔다. 이 영화는 잭슨이 오랜 침체기를 딛고 10년 만에 재개하는 컴백투어 ‘디스 이즈 잇’의 리허설 과정을 캐주얼하게 담아둔 영상들로 만든 것이다. 그가 자신의 마지막이자 가장 멋진 도전이 될 것이라고 했던 이 투어는 2009년 7월13일 런던에서 시작해 파리, 뉴욕, 뭄바이로 옮겨갈 예정이었고, 잭슨은 그해 5월 LA의 스테이플스 센터와 포럼에서 공연 리허설에 돌입했다.
영화는 마이클 잭슨과 춤 한번 춰보려고 전 세계에서 모여든 수백명의 댄서 오디션으로부터 시작된다. 여기서 뽑힌 10여명의 댄서들과 마이클이 함께 하는 역동적인 연습장면이 계속 나오는데, 놀라운 것은 최고실력을 자부하는 팔팔한 젊은 댄서들보다 50세 마이클의 동작이 얼마나 유려하고 아름다운지, 영화를 보면서 계속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대망의 런던 공연을 18일 앞둔 마지막 드레스리허설, 수십명의 크루와 스태프들이 들떠서 분출하던 흥분과 기대는 그러나 바로 다음날 그의 돌연한 죽음으로 허망하게 끝난다.
그 2년 후인 2011년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가 만든 쇼(‘Michael Jackson: The Immortal World Tour’)를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보았다. 어땠는지 솔직히 기억에 별로 남아있지 않은데, 아무래도 서커스에 치중한 쇼여서 임팩트가 크지 않았을 것이다. 이 쇼는 더 화려한 버전의 ‘마이클 잭슨: 원’으로 만들어져 라스베가스 만달레이 베이 호텔의 상주 쇼로 지금도 매일 2회 공연되고 있다.
그리고 또 10년이 지나 뮤지컬이 나왔다. 지난 주 할리웃의 팬태지스 극장에서 시작된 ‘MJ 더 뮤지컬’은 2022년 2월 브로드웨이에서 개막, 토니상 10개 부문 후보에 올라 4개 부문을 석권한 작품이다.
퓰리처상 2회 수상작가 린 노티지의 극본에 로열발레와 뉴욕시티발레 안무가였던 크리스토퍼 휠던의 안무와 연출로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동전을 넣으면 노래가 나오는 주크박스처럼 유명가수의 히트송들이 계속 나와 흥행이 보장된 뮤지컬)로, 심장을 두드리는 강렬한 비트의 첫 곡 ‘빗 잇’부터 ‘맨 인 더 미러’가 장식하는 엔딩까지 마이클 잭슨의 히트송 약 30곡이 화려한 댄스 퍼포먼스와 함께 펼쳐진다.
배경은 1992년 ‘데인저러스’(Dangerous) 월드 투어 리허설 현장. 여기에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찾아온 기자와 카메라맨이 마이클 잭슨과 인터뷰할 기회를 노리며 따라다닌다. 예산을 뛰어넘는 최고의 퍼포먼스와 화려한 무대를 고집하며 코러스와 댄서를 다그치고 스태프와 충돌하는 MJ, 완벽주의자이면서 동시에 자기 파괴적이기도 했던 인간 마이클 잭슨의 복잡한 내면이 기자의 집요한 질문을 통해 조금씩 벗겨진다.
1969년 데뷔한 ’잭슨 파이브’ 시절을 지나 1979년 솔로로 나서면서 전설적인 팝의 황제가 된 수퍼스타, 하지만 그의 삶을 지배하는건 강하고 폭력적인 아버지의 트라우마다. 여리고 예민한 감성을 가진 아이가 어린 시절 받은 상처가 얼마나 컸는지, 뮤지컬은 그가 아픈 기억들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다가 이를 음악으로 승화시키는 과정을 문득문득 보여준다. 신나는 춤과 음악이 객석을 들썩이게 하는 한편 가슴이 싸해지는 공연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부터 여러 명의 MJ가 등장하는데 다들 마이클 잭슨이 환생한 것처럼 기막히게 노래하고 춤춘다. 그렇다 해도 보면 볼수록 더욱 그가 그리워지는 건, 99% 똑같아도 나머지 1%가 모자라는데 그건 MJ 외에는 결코 구현할 수 없는 그만의 특별함이기 때문이다.
꼭 듣고 싶었던 ‘벤’(Ben)은 나오지 않았다. 마이클 잭슨이 14세 때 애절한 감성을 담아 부른 노래… 그런데 오히려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벤’을 어린 마이클처럼 부를 수 있는 가수는 절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숙희, LA미주본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