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나무에게 결핍과 부족은 불행이 아니고 축복이다. 부족함이 많으면 포도나무 뿌리는 강한 헝그리 정신으로 자신을 무장한다. 죽기 살기로 땅속깊이 뿌리를 내린다. 강렬한 헝그리 정신으로 충만한 뿌리가 왕성하게 내려뻗을 때에는 앞을 가로막는 암석도 큰 나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포도나무에게는 목마른 사슴이 물을 찾기에 갈급함과 같은 애타는 목마름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최고의 포도가 산출된다.
포도나무에게 고난은 더 큰 축복을 여는 검증이다. 엄밀한 검증은 성장을 위한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포도농사처럼 손이 많이 가고 힘든 과정을 많이 거치는 농사가 또 어디 있을까.
특히 산비탈 언덕의 포도원 농사는 문자 그대로 농부의 초인적 노력이 요구된다. 누군가가 산비탈 언덕 포도원을 영웅의 포도원이라고 불렀다. 한 마디로 포도열매는 낮선 환경에 치열하게 적응하는 고난 과정의 결과물인 것이다.” <김창만의 ‘포도나무 리더십’ 중에서>
약삭빠른 포도원 농부들이 있다. 그들은 힘든 고난의 과정을 무작정 피하고 싶어 한다. 쉽고 편안한 방법으로 자신의 목적만 이루려고 서두른다. 자신의 돈벌이만 생각하는 상업주의의 달콤한 유혹이고 속임수다.
그대가 진실한 포도원 농부가 되기 원한다면 땀의 수고와 기다림의 인내가 필요하다는 진리를 인정하고 그 앞에 겸손하게 낮아져야 한다.
‘죄 없는 고난’은 의인 욥이 돌연히 직면한 신앙의 숙제였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욥이 사탄이 쳐 놓은 고난의 검증을 끝까지 견뎌내고 과연 승리할 수 있을까, 욥기가 우리에게 묻고 있는 실존적 질문이다.
사탄이 욥에게 기대한 것은 욥이 죄 없이 받는 고난에 대하여 하나님께 불평하고 악한 말을 하고 떠나가는 것이었으나 그런 일은 욥에게 일어나지 않았다. 욥은 긴 내적 토론을 거친 후 죄 없는 고난의 검증을 통과하므로 하나님을 향한 욥의 신비한 사랑은 인정받았다. 그 결과 사탄은 참패했고 욥의 축복은 갑절이 되었다.
불행하게도 기독교가 고난에서 벗어나 달콤함을 선택한 때가 있었다. 주후 313년이다. 콘스탄티누스 로마 황제가 밀라노 칙령을 발표하여 국가적으로 기독교를 우대하고 보호했다. “고난은 다 지나갔다.”라는 선언과 함께 달콤함을 맛 본 기독교는 재빠르게 쇠퇴의 길을 걸었다. 오늘 날 기독교 안에 영웅의 포도원은 어디 있는가.
<김창만/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