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자(시인·수필가)
한 해를 보내면서 넉넉한 대평원 같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자칫 깊은 골짜기에 발을 헛디딜 뻔한 위기감을 조성해내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외롭고 위험한 길을 동행해 주는 영혼이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한 해를 지나왔다. 추수감사절 연휴 동안을 독감으로 황금연휴를 허비하며 피곤한 연휴를 보내게 된 사연도 비집고 들어선다. 주치의 병원도 추수감사절기로 긴 연휴를 택한 터라 약국에서 구입한 감기약을 복용하면서 따뜻한 차를 마시고 소금물과 레몬즙을 이용해서 가글을 했지만 기침을 갈수록 컹컹대는 야수 소리로 돌변해가고 근육통, 몸살로 견디기 힘든 연휴를 겨우 넘기고 월요일 일찍이 주치의를 찾게 되었다. 주사 두 방에 약을 처방받았다. 약을 먹고 가라앉는 몸을 추스르는데 구토 증세와 설사까지 반갑지 않은 행사를 치르고 자리에 눕자 온 몸이 냉동실에 들어간 듯 싸늘하게 식어 가기 시작하더니 식은 땀이 마치 물이 뚝뚝 떨어지듯 온 몸에 땀범벅이 되면서 의식이 까마득하게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우리 집 할배 말씀에 구급차를 불렀는데도 세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통보를 받으면서 망연자실한채 먼저 도착한 소방관들의 응급조치를 받는 사이 아파트에 상시 근무중인 시큐리티의 분망한 도움으로 곧장 앰뷸런스가 도착해서 응급실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얼마를 지났는지 병원 응급실에서 눈을 뜨고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다. 한인 간호사 분을 만나 이모저모 도움을 받게 되면서 링거가 꽂히고 여러 약들이 링거에 주입되면서 검사가 시작되고 원인 추적을 하는 동안 몸도 정신력도 자꾸만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다가 새벽녘에야 혼미함 가운데서 겨우 몸을 수습하고 퇴원 수속을 하게 되었다. 한인 간호사 분의 극진한 진료에 미처 감사를 드리지도 못한 상태에서 언제 준비하셨는지 우버까지 대기하게 해주셔서 얼떨결에 차에 오르게 되었다. 요금까지 손수 지불해주신 것도 택시에서 내리면서 알게 되었다. 이름표를 보고 겨우 Michelle Cho로 알게 되었지만 전화번호까지 극구 사양하신 터라 감사를 전할 틈도 없이 속수무책 병원을 떠나게 되었다. 이런 천사 같은 분을 어디서 만날 수 있으랴. 시간이 지날수록 고마움이 느껴지는 게 아니라 잔잔하게 온 몸으로 스며들고 있다. 지난 한해를 항해하는 동안 아름다운 영혼을 지니신 또 한 분을 만났다. 변호사와 의뢰인 관계는 사무적으로 딱딱한 주제를 다루어야 하기에 그리 부드럽지 않은 어투로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이 통상적인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 분은 친 부모의 사연처럼 마음을 세세하게 보듬어주며 노년에 접어든 존재 자체를 귀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돕고자 하는 마음이 역력해 보이시는 분이셨다. 아픈 일을 나눌 때는 의뢰인 보다 먼저 눈시울이 붉어졌던 따뜻한 사람으로 변호사라기보다 인생상담자 역할까지 감당해 주셨다. 이 시대에선 만나기 힘든 신의에 밝고 정이 많으신 분을 만난 것이다. 대담을 나누고 돌아설 때마다 마음에 거슬림 없는 흐뭇한 평안을 안겨 주셨다. STK 변호사님의 앞날이 눈에 보일 만큼 평안을 나누시는 분이셨다. 영혼이 아름다운 사람으로 우리 곁에 오래 머물러 주시기를 나도 모르게 기도하게 되는 보기드문 정답고 포근한 분이시다. 계묘년 한 해를 떠나 보내면서 이토록 영혼이 아름다운 사람들과의 만남이 있었기에 보람 되고 행복한 한해를 마무리 할 것 같다.
자격지심에 숨겨진 티가 많은 사람인데 올 한 해도 창조주께서 수호천사를 보내주셨기에 내년에는 스스로가 아름다운 사람으로 다가 서는 새해로 만들고 싶다. 인생길을 동행해주기는 쉽지만 영혼까지 내어놓으려는 사람을 만나기는 어려운 세상이다. 사랑을 나누는 사람을 위해선 모든 걸 다 내어준다 해도 영혼까지 다 내어주는 사람 또한 만나기란 쉽지 않다. 밝고 빛나는 영혼을 지닌 사람은 어둠 속 에서야 비로소 발견된다. 아름다운 사람들은 정직한 영혼 이기를 꿈꾸며 살아갈 것이다. 세상으로부터 무관심, 질시와 비판으로 육신이 아프고 허물어져도 아름다운 사람들은 밝고 맑은 영혼의 횃불을 들고 미래의 역사까지 비추어 갈 것이라 믿어진다. 영혼이 아름다운 사람들의 가슴마다에는 영롱한 진리의 별이 빛나고 있어 위선과 거짓, 가식을 내려 놓으며 먼동이 트는 새벽을 열며 세상을 깨워가고 있다.
종일 스치고 지나치기도 하고, 만나지기도 하는 과정 중에 위로가 되고 멀리서 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사람이 있다. 이러한 아름다운 사람들로 인해 세상은 밝고 맑아 지고 정화되어 간다. 세상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들로 하여 세상은 살만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아름다운 사람들’ 시리즈가 계속 이어지기를 바램해본다. 이즈음 아파트 복도에서 만나는 분 마다 괜찮으냐고 염려해 주시며 마음을 써 주시는 분들을 뵐 때마다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 살아왔구나 하는 감명의 여운이 마음에 깊이 새겨지고 있다. 세상이 만든 아름다움의 기준은 세월 따라 변할 수 있다지만 아름다움 그 자체는 변함이 없는 것으로 아름다움을 새롭게 발견해가는 삶을 일구며 아름다운 사람들을 닮아가고 싶다. 아름다운 사람들은 처음부터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개발해가며 얻어낼 수 있는 귀한 자산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