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늦은 나이에 맨해튼에 있는 어느 회사에 취직하게 되었다.
얼마 전 이 회사를 포함 해 몇몇 회사에 입사원서를 넣었었다. 앞서 면접을 보았던 서너 곳에서는 인터뷰하러 갔을 때 백발노인인 것을 보자마자 한결 같이 곧 연락하겠다는 빤한 거짓말과 함께 문전 퇴짜를 놓았었다.
그래서 이 회사 여직원으로부터 면접을 보러오라는 전화를 받았을 때도 나는 심드렁하게 반문했다. “제가 나이가 많거든요.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뉴저지에서 뉴욕까지 면접 보러 가려면 기차를 여러 번 갈아타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데…”
여직원은 사장님께서 꼭 만나 뵙고 싶어 하니 한번 오시면 고맙겠노라고 말했다. 나는 또 한 번 헛걸음칠 생각으로 그 회사를 찾아갔다. 2층에 있는 회의실로 안내되었을 때 여러 사람들이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장님으로 보이는 분이 멀리서 와주셔서 고맙다는 인사말과 함께 경력과 전공 분야 등 몇 가지 기본적인 질문을 하였다. 사장님은 웃으면서 이삼일 내로 결과를 통보해주겠노라고 말했다. 이틀 후 예의 그 여직원으로부터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채용이 결정되었으니 월요일부터 출근하라는 내용이었다.
맨해튼에 출근하기 위해서는 뉴저지에서 기차를 타고 뉴욕 펜스테이션에서 내려 지하철을 타고 목적지까지 가야한다. 뉴욕 지리에 밝지 못한 나는 스마트폰에서 챗봇 앱을 열어 어떻게 찾아가는 것이 가장 빠르고 편리한지 물어보았다. 챗봇은 즉시 친절하고 자세하게 안내를 해주었다.
펜스테이션에서 하차한 다음 지하철을 3번 갈아타고 가는 것으로 되어있었다. 챗봇이 가르쳐준 대로 따라갔더니 과연 목적지에 틀림없이 당도할 수 있었다. 기특한 챗봇, 똑똑하기도 하지. 나는 매일 아침 펜스테이션에서 내려 지하철을 세번 갈아타면서 회사로 출근하였다.
두어달을 그렇게 출근하다가 좀 더 편하게 가는 방법은 없을까 하고 지하철 노선도를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펜스테이션에서 회사까지 한 번만 타도 되는 노선이 있는 것이 아닌가.
‘멍청한 챗봇 같으니라구. 이렇게 빠르고 편한 길이 있는데 지하철을 세 번씩이나 갈아타게 이 할배를 뺑뺑이 돌리다니’ 마침내 합리적인 의심 본능을 발휘하여 챗봇의 무능함을 찾아낸 이 할배가 챗봇보다 훨씬 더 똑똑하지 않은가.
그런데, 챗봇의 농간에 놀아나 두 달이나 불필요한 환승을 거듭하며 시간과 체력을 소모한 할배는 챗봇보다 더 멍청하지 않은가. 어느 쪽이 맞지? 똑똑이 할배? 멍청이 할배?
<채수호 /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