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경동나비
첫광고
엘리트 학원

[나의 생각] 챗봇보다 똑똑한 할배

| 외부 칼럼 | 2023-11-27 17:35:11

나의 생각, 채수호, 자유기고가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누가 스킨 케어

많이 늦은 나이에 맨해튼에 있는 어느 회사에 취직하게 되었다.

 

얼마 전 이 회사를 포함 해 몇몇 회사에 입사원서를 넣었었다. 앞서 면접을 보았던 서너 곳에서는 인터뷰하러 갔을 때 백발노인인 것을 보자마자 한결 같이 곧 연락하겠다는 빤한 거짓말과 함께 문전 퇴짜를 놓았었다. 

그래서 이 회사 여직원으로부터 면접을 보러오라는 전화를 받았을 때도 나는 심드렁하게 반문했다. “제가 나이가 많거든요.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뉴저지에서 뉴욕까지 면접 보러 가려면 기차를 여러 번 갈아타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데…”

여직원은 사장님께서 꼭 만나 뵙고 싶어 하니 한번 오시면 고맙겠노라고 말했다. 나는 또 한 번 헛걸음칠 생각으로 그 회사를 찾아갔다. 2층에 있는 회의실로 안내되었을 때 여러 사람들이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장님으로 보이는 분이 멀리서 와주셔서 고맙다는 인사말과 함께 경력과 전공 분야 등 몇 가지 기본적인 질문을 하였다. 사장님은 웃으면서 이삼일 내로 결과를 통보해주겠노라고 말했다. 이틀 후 예의 그 여직원으로부터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채용이 결정되었으니 월요일부터 출근하라는 내용이었다.

맨해튼에 출근하기 위해서는 뉴저지에서 기차를 타고 뉴욕 펜스테이션에서 내려 지하철을 타고 목적지까지 가야한다. 뉴욕 지리에 밝지 못한 나는 스마트폰에서 챗봇 앱을 열어 어떻게 찾아가는 것이 가장 빠르고 편리한지 물어보았다. 챗봇은 즉시 친절하고 자세하게 안내를 해주었다. 

펜스테이션에서 하차한 다음 지하철을 3번 갈아타고 가는 것으로 되어있었다. 챗봇이 가르쳐준 대로 따라갔더니 과연 목적지에 틀림없이 당도할 수 있었다. 기특한 챗봇, 똑똑하기도 하지. 나는 매일 아침 펜스테이션에서 내려 지하철을 세번 갈아타면서 회사로 출근하였다.

두어달을 그렇게 출근하다가 좀 더 편하게 가는 방법은 없을까 하고 지하철 노선도를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펜스테이션에서 회사까지 한 번만 타도 되는 노선이 있는 것이 아닌가.

‘멍청한 챗봇 같으니라구. 이렇게 빠르고 편한 길이 있는데 지하철을 세 번씩이나 갈아타게 이 할배를 뺑뺑이 돌리다니’ 마침내 합리적인 의심 본능을 발휘하여 챗봇의 무능함을 찾아낸 이 할배가 챗봇보다 훨씬 더 똑똑하지 않은가.

그런데, 챗봇의 농간에 놀아나 두 달이나 불필요한 환승을 거듭하며 시간과 체력을 소모한 할배는 챗봇보다 더 멍청하지 않은가. 어느 쪽이 맞지? 똑똑이 할배? 멍청이 할배?  

<채수호 /  자유기고가>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법률칼럼] 트럼프의 대량 추방대상

케빈 김 법무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규모 이민자 추방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그의 이민법 집행 계획이 실제로 어떤 모습일지에 대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 당선자는

[벌레박사 칼럼] 카펫 비틀 벌레 퇴치법

벌레박사 썬박 미국에 있는 대부분의 집들은 카펫이 깔려 있다. 카펫에서 나오는 벌레 중 많은 질문을 하는 벌레 가운데 하나가 바로 카펫 비틀(Carpet Beetle) 이다. 카펫

[행복한 아침] 자연의 가을, 생의 가을

김정자(시인·수필가)                                       단풍 여행을 떠나자는 권면을 받곤 했는데 어느 새 깊은 가을 속으로 들어섰다. 애틀랜타 가

[삶과 생각] 청춘 회억(回憶)

가을이 되니 생각이 많아진다. 그런 생각 중에서도 인생의 가장 치열한 시간은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때인 것 같다. 입시를 앞 둔 몇 달, 마지막 정리를 하며 분초를 아끼며 집중했던

[데스크의 창] ‘멕시칸 없는 하루’ 현실화될까?

#지난 2004년 개봉한 ‘멕시칸 없는 하루(A Day Without a Mexican)’는 캘리포니아에서 어느 한 날 멕시칸이 일시에 사라졌을 때 벌어질 수 있는 가상적인 혼란을

[인사이드] 검사를 싫어하는 트럼프 당선인
[인사이드] 검사를 싫어하는 트럼프 당선인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했다. 선거전 여론 조사에서 트럼프와 해리스가 연일 박빙의 구도를 보였으나 결과는 이를 비웃는 듯 트럼프가 압승을 거두어 모

[뉴스칼럼] 유튜브 채널의 아동착취

가족을 소재로 한 유튜브 콘텐츠가 적지 않다. 주로 부부가 주인공이다. 유튜브 부부는 경제적으로는 동업 관계다. 함께 제작하거나 동영상 촬영에 협력하면서 돈을 번다. 유튜브 채널이

[신앙칼럼] 차원 높은 감사(The High Level Of Gratitude, 합Hab. 3:16-19)

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8). 여호와, 하나님을 감사의 대상으로 삼는

[뉴스칼럼] 슬기로운 연말모임 - 말조심

“아버지가 언제 그렇게 바뀌었는지 알 수가 없다”고 60대의 백인남성은 기가 막혀했다. LA에서 대학교수로 일하는 그는 부친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최근 동부에 다녀왔다. 90대

[파리드 자카리아 칼럼] 민주당의 세 가지 실수
[파리드 자카리아 칼럼] 민주당의 세 가지 실수

언뜻 보기에 2024년 한해 동안 나라 안팎에서 치러진 선거는 팬데믹 이후의 혼란과 인플레이션에 휘말린 정치 지도자들을 한꺼번에 쓸어간 거대한 물결로 설명할 수 있을 듯 싶다. 지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