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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고향 가는 길

| 외부 칼럼 | 2023-11-27 17:29:38

시론, 민병임 뉴욕논설위원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누가 스킨 케어

뉴욕 이민살이를 20~30여년 간 같이 해온 주위 사람들이 갑자기 전화가 와서는 “한국으로 가게 되었다.”고 한다. 아쉬운 마음에 송별회도 하지만 한편으로 모든 것 버리고 훌훌 떠나는 그 마음이 부럽기도 하다.

가까운 가족 한 명은 코로나 팬데믹이 일어나기 직전인 2019년 12월에 살던 집을 팔고 식탁과 침대, 소파 등은 동생이나 조카에게, TV나 전자제품은 집 산 사람에게 나눠주고 이민 가방 하나만 들고 한국으로 역이민했다.

35년간 뉴욕생활을 하면서 70세로 은퇴하고 나니 매일 아침 출근할 곳이 없어진데다 고향 생각이 나서 한국에서 10년간 살아보겠다는 것이다. 더 늙어서 거동이 불편해지면 다시 뉴욕으로 와 너싱홈에 들어가겠다는 것이다.

또한 시한부 병을 앓던 아내를 먼저 보낸 67세 선배는 결혼한 딸, 비혼주의자인 아들은 다 컸으므로 40년 전 이민 오느라 헤어졌던 95세 노모 곁으로 갔다. 노환으로 남편이 죽고 출가한 아들딸은 잘살고 있으니 남은 생은 고국산천 유람하며 살고 싶다고 간 선배도 있다.

한국일보 오피니언 난에 자주 글을 쓰던 한 필자는 노상전도를 상당히 열심히 하였는데 심장병 수술을 두 번 한 후 한국으로 역이민한다는 전화가 왔다.

한국으로 가도 소셜시큐리티 연금을 수령할 수 있고 일단 미국보다 한국이 집값이나 식비가 싸서 생활비가 적게 든다는 것이다. 올해만 해도 지난여름,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이 1,440원을 돌파하는 등 달러화 초강세가 이어지면서 역이민하는 사람도 있었다지만 이는 별로 큰 영향을 주지 않는 것 같다.

한국에서 만 65세 이상이면 복수국적이 허용된다. 한국에서 6개월간 거주하면 거소증을 신청할 수 있다. 거소증은 ‘외국국적동포 국내 거소신고증’을 말하는 것으로 해외시민권자가 한국에 90일 이상 장기체류를 원할 경우 출입국사무소를 통해 받는 신분증이다.

은행계좌 개설, 신용카드 발급 등 금융거래, 운전면허증 발급, 건강의료보험 가입이 가능하다. 특히 의료시스템이 미국에 비해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선지 코로나19 팬데믹과 인플레 속에서 한국행을 고민하는 시니어들이 제법 있다. 완전귀국이냐, 양쪽을 오가며 비행기 운임과 생활비를 땅에 뿌리며 살 것인가 고민하게 된다.

한국행의 가장 큰 이유는 고향 땅에 대한 그리움, 자연스레 귓전에 스며드는 한국말과 몸에 배었던 습관, 어린 시절을 함께 한 친지와 친구 보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특히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총기난사 사고, 아시안에 대한 묻지마 폭력, 인종차별, 증오범죄는 한국에서는 걱정 안 해도 된다. 한국 땅이라고 사고나 예기치 않은 범죄에 노출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얼마 전 한국의 언니와 통화 하다가 “나는 언제나 고향으로 돌아가려나” 했더니 하하 웃었다. 국어교사로 평생을 보낸 언니는 교과서에 나오는 당나라 시인 두보의 ‘두시언해(杜詩諺解)’의 시구를 떠올렸을 것이다.

두보(712년~770년)는 안록산의 난으로 당나라가 혼란하던 시기, 전쟁과 반란을 피해 가족들을 이끌고 여러 지역을 전전했다. 백성의 궁핍한 삶을 보았고 자신의 아들도 굶주림으로 잃을 정도로 고통스런 삶을 살았지만, 이 애환들을 시로 승화시켰다.

시 ‘강벽조유백(江碧鳥遊白)’에서 “강물이 푸르니 새가 더욱 희고/ 산이 푸르니 꽃은 타는 듯 더욱 붉구나/ 올봄도 이렇게 지나가니/ 고향에 돌아가는 날 그 언제일까?”라 했다.

두보는 44세부터 유랑하다가 59세에 단저우의 허름한 배 위에서 죽었다. 돌아가지 못한 고향 허난성 궁현 난야오완촌에 사후 40년이 지나서야 묻혔다.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하며 두보의 시로 그 글을 알리고자 했고 성종때 두보의 시들을 펴낸 ‘두시언해’가 간행되었다.

뉴욕 한인들은 한국에 가서 고국산천과 가족, 친구가 그리웠던 정이 어느 정도 해갈되면 자식이 있는 옆으로 돌아올 것이다. 한국에 가면 뉴욕이 또 우리의 고향이 되는 것이다.

어제는 힘들었지만 오늘 하루는 행복했고 보람 있었다. 우리들은 언제 고향 가는 길에 오를지 모르지만 그래도 오늘은 한 번뿐이다. 오늘은 다시 오지 않는다. 오늘 잘 살자. 

<민병임 뉴욕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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