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이규 레스토랑
김성희 부동산
첫광고

[단상] 묵은지

| 외부 칼럼 | 2023-11-27 14:50:17

단상, 박선주, 샌프란시스코

권순상 노흥성 부동산 470-218-6136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미국에서 김치를 담그면 며칠 가지 않아 물러진다. 1년이 지나면 흐물흐물 되는 김치들. 땅이 다르고 기후가 달라서인지 미국의 배추로는 도무지 몇 년 동안 묵혀서 먹는 묵은지의 맛을 낼 수가 없다.

 

한국에서는 먹고 싶은 각양각색의 김치들을 집에서 클릭만 하면 배달되지만, 이곳은 그럴 수 없어 참 아쉽다. 더군다나 갑자기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라도 대접하고 싶은 나는, 바로 요리할 수 있는 맛있는 묵은지만 있다면야 든든하고 참 고마운 존재다.

그 귀한 묵은지가 우리 집 김치냉장고 깊은 곳에 보물처럼 숨겨져 있다. 해마다 이 묵은지를 만들기 위해 우리 엄마는 1년 내내 재료들을 마련하신다. 그리고 겨울이 되면 정작 엄마는 드시지도 않을 김치를 얼마나 많이 담그시는지… 서울에 사는 딸, 가까이 있는 아들, 딸들에게 주기 위함도 있지만 미국에 있는 딸을 위해 최고의 재료로 김장하신다. 그리고 이곳에 오는 사람들 편에 김장김치를 보내신다. 그 김치가 우리 집 김치냉장고에 차곡차곡 쌓여 1년이 묵혀지고, 어떤 김치는 3년도 묵혀진다.

엄마는 김치를 보내시고 너무 신나는 목소리로 전화하신다. “선주야! 김치 보냈다.” 그리고 꼭 당부하시는 말씀이 있다. “이민 생활에 외롭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희 집에 찾아온다면 이 김치로 따뜻한 밥 한 끼라도 꼭 대접해 드려라…” . 

이 말씀이 늘 내 마음에는 당연함으로 새겨졌다. 엄마의 그 마음은 묵은지를 드시는 모든 분에게 말하지 않아도 전해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아삭아삭하고 깊은 맛이 나는 이 묵은지의 맛을 미국 땅에서 맛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감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젠 그 묵은지가 몇 포기 남아있지 않다. 3년 전에 엄마가 마지막으로 보내주신 묵은지를 담은 통이 언제부턴가 가벼워지고 있다. 점점 비워지는 묵은지를 볼 때마다 내 마음이 왜 이리도 허전할까? 아마도 마지막 남은 김치를 먹는 날은… 가슴이 먹먹해질 것 같다.

오늘은 왠지 묵은지를 보며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할 삶에, 작지만 소망 하나를 더해보고 싶다. 누군가의 나눔과 섬김으로 받기만을 기대하며 살아갔다면 이젠, 받지 못하는 서운함은 서서히 비워야 하지 않을까… 한 사람의 정성과 삶으로 만들어 낸 잘 숙성된 묵은지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아삭아삭해지며 깊은 맛을 내어 누군가에게 위로와 감사가 전해지는 삶으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묵은지 안에 담긴 따뜻한 나눔의 마음은 나를 통해 흘러가 많은 이들의 삶에 또 다른 채워짐으로 담기길 소망해본다. 

<박선주/샌프란시스코>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차고문을 들이받았다면 자동차보험일까, 주택보험일까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차고문을 들이받았다면 자동차보험일까, 주택보험일까

집에서 일어나는 자동차 사고 가운데 의외로 자주 발생하는 것이 있다. 바로 차고(Garage)에서 일어나는 사고이다. 후진하다가 차고문을 들이받거나, 기어를 잘못 넣어 집 벽을 들

[애틀랜타 칼럼] 상대방의 마음을 열게하는  지름 길

이용희 목사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상대방에게 끊임없이 설득을 시도하곤 합니다.  이런 경향은 세일즈맨들에게 흔히 나타납니다. 그러나 정말로 완전하게 자신의 뜻

[행복한 아침] 마음이 담긴 말

김 정자(시인 수필가)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마음을 깊이 다친 적이 있다. 한참을 따끔하게 보답해 줄 한 마디를 찾아 헤매느라 무수한 말들이 내 마음을 휘젓고 다녔다. 사람마다

[신앙칼럼] 유혹의 안전지대: 하나님의 전신갑주(Beyond Temptation: Standing Firm in the Armor of God, 에베소서 Ephesians 6:11~18)

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1. 도입: 인간이 만든 '가짜 안전지대'의 허상 (Illusion of Safety)15세기 영성가 토마스 아 켐피스는 *"유혹을 받을

[재정칼럼]   천경태의 은퇴를 지키는 쇼셜시큐리티 인사이트 -  은퇴와 생활의 기초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제도 읽기 (22)
[재정칼럼]  천경태의 은퇴를 지키는 쇼셜시큐리티 인사이트 -  은퇴와 생활의 기초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제도 읽기 (22)

알아두면 든든한 사회보장국 공식 유튜브 필수 영상 5선과 디지털 소통 가이드온라인 계정·은퇴연금·장애심사·SSI·사기예방까지… 영상으로 만나는 핵심 복지 길잡이 천경태 (금융전문가

[특별기고] 9월 4일, 우리는 그날을 잊지 말아야 한다
[특별기고] 9월 4일, 우리는 그날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미셸 강 (조지아주 하원의원 후보, District 99) 현대·LG ICE 단속 1년, 우리가 묻는 질문은 “어떤 미국을 원하는가”이다 2025년 9월 4일. 조지아 한인사회는

[추억의 아름다운 시] 뒷 산

뒷산 / 신달자 외로울 적에마음 답답할 적에뒷산에 올라가 마음을 벗는다나무마다 하나씩 마음을 걸어두고노을을 받으며 드러눕는 그림자돌아가는 것이 없는 빈 몸이다뒤산은 뒷산은 내 몸이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  집 앞 나무를 자르다 생긴 사고, 주택보험이 책임질까?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 집 앞 나무를 자르다 생긴 사고, 주택보험이 책임질까?

최선호 보험전문인 나무는 집의 분위기를 바꾸는 가장 훌륭한 조경 가운데 하나다.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고, 겨울에는 삭막한 풍경에 자연의 멋을 더해 준다. 잘 가꿔진 큰

[애틀랜타 칼럼] 상대방의 위치에서 보라

이용희 목사 우리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때 처음부터 서로의 견해가 다른 주제를 꺼내서는 안 됩니다. 서로가 일치된 생각을 나눌 수 있는 문제부터 차근차근 시작해야 합니다.  그

[독자기고] 건너온 음악, 삶을 보듬다

김건흡(수필가·칼럼니스트) 황혼의 길목에서 가만히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인생의 중요한 모퉁이마다 이름 없는 선율들이 나직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악보 위에 새겨진 까만 음표들이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