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을 겨냥한 하마스의 테러공격과 이에 맞선 이스라일의 군사행동은 미국과 유럽에 치열한 논란을 불러왔다. 이번 전쟁을 지켜보면서 필자는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이 세상에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는 사람이 과연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필자는 지난달 7일 하마스가 저지른 테러를 강력히 비난한 바 있다. 가자에 근거지를 둔 무장정파의 지지자들은 하마스가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문제의 해법인 ‘두 국가 체제’에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씨름해야 할 문제는 도무지 접점을 찾을 수 없는 엇갈린 견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느냐이다. 자유로운 의사표현과 집회는 진지한 담론을 가로막는 물리적 협박이나 괴롭힘과는 다르다.
몇 년 전 대학가에서 터져나온 언론 자유 논란은 ? 벤 샤피로와 콘돌리자 라이스 등 ? 보수진영 인사들의 강연 취소와 연관된 것이었다. 보수성향이 짙은 일부 주는 캠퍼스의 언론 자유를 보호해야한다며 수십 건의 법안을 주 의회에 상정했다. 지난 2021년, 연방하원의 공화당 의원들은 표현과 결사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캠퍼스 프리 스피치 코커스’를 발족했다.
같은 해 1월,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공화)는 “논란에 휩싸인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며 “향후 후 2-3년 내에 법적제도를 우선적으로 마련해야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달 말 갑작스레 입장을 바꾼 디샌티스는 플로리다주립대학 총장에게 캠퍼스 안의 ‘팔레스타인 정의를 위한 학생모임’ 지부를 폐쇄하라고 지시했다. 디샌티스는 이 단체가 테러조직에 ‘물질적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고 비난했지만 필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들은 교내 시위와 집회를 주도하는데 그쳤다.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선 비벡 라마스와미가 지적했듯, 법원은 극렬 집단에 지지의사를 표시하는 것은 돈이나 물질, 혹은 무기를 제공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고 판결했다.
다른 보수 인사들은 하마스 지지그룹에 속한 학생들의 신원을 공개해 망신을 주려했다. 한 헤지펀드 매니저는 이들이 졸업 후 금융업계에 취업을 하지 못하도록 명단을 작성해 돌리자고 제안했다. 다수의 ‘큰손’ 기부자들은 대학 당국이 하마스를 비난하거나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할 것을 요구했고, 일부는 특정 집회와 강연을 금지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외부 압력에 굴복해 성명을 발표한 상당수의 단과대학 학장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나 하마스에 대한 비난이 충분치 않다는 지적에 따라 후속 입장문을 내놓았다.
과거의 대학은 이렇지 않았다. 베트남전 반전운동과 민권운동의 열기가 절정을 이루었던 1967년, 법학자 해리 켈빈을 주축으로 하는 시카고대학 커미티는 논쟁적인 정치 이슈에 대해 대학 당국이 공식적인 입장을 취할 경우 대학은 본연의 사명을 완수할 수 없게 된다고 주장했다. “지적 탐구에 충실하려면 대학은 자체 내의 다양한 견해를 흔쾌히 포용하고, 격려해야한다. 대학은 가르치고 연구하는, 중요하지만 제한된 목적을 지닌 공동체다. 대학은 클럽이 아니고, 노동조합이나 로비단체도 아니다. 대학은 비판정신을 키우고 함양하는 곳이다; 대학 당국이 스스로 비평가를 자처해선 안 된다.”
캘빈 보고서가 적시했듯, 자유로운 토론의 출발점은 상대편이 강력히 표출하는 의견을 경청하는 것이 이를 금지하고 침묵시키는 것보다 낫다는 인식이다. 이 경우 한쪽의 주장과 다른 쪽의 반박이 어우러지는 열린 토론을 통해 접점을 모색할 수 있게 된다. 공개적인 토론의 대안은 담론을 음모론으로 변질시키고, 종종 폭력을 분출하는 정치활동의 음지와 시궁창으로 몰아넣는다.
인도에서 성장한 필자는 책을 통해 접한 미국의 확고한 언론 자유 의지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놀랍게도 미국의 법원은 1977년, 나치 그룹이 시카고 교외인 일리노이주의 스코키에서 행진을 하도록 허용했다. 1970년대에 ‘하버드 크림슨’은 폴 포트의 캄보디아 정권 장악을 찬양하는 논설을 게재했다.
필자가 대학에 진학한 1980년대 초의 캠퍼스는 공산주의 혁명가들로부터 흑인이 열등한 종족이라는 노벨상 수상 과학자 윌리엄 쇼클리에 이르기까지 선동적인 견해가 봇물을 이루었다. 21세기로 접어든 이후 필자는 이라크전, 심지어 2001년의 9/11 테러공격에 대한 대학의 공식적인 입장표명을 접한 기억이 거의 없다.
우리는 지금 과거와는 판이하게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대학은 정치적인 입장을 밝히라는 가중된 압력에 처했다. 조지 플로이드 살해사건은 현실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 대학이 성명을 발표하는 전환점이 됐다.
일단 한 가지 정치적 이슈에 견해를 밝히자, 하마스의 테러에 대해서도 비난 성명을 내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이해할만 한 일이긴 하지만, 도대체 대학의 입장표명은 어디쯤에서 끝날까? 판도라의 상자는 이미 열렸다. 이제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 터질 때마다 대학 당국은 이를 비난해야 할지, 지지해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대학은 테러행위와 인권남용 사례 가운데 어느 것을 비난하고, 어느 것을 용인할지 결정할 확실한 기준을 제시할 수 있을까?
캘빈 보고서가 제시한 표현의 자유가 지나치게 냉정한 중립성을 띄우기 때문에 수용할 수 없다는 다수의 견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필자는 알지 못한다.
우리는 대학이 우리의 열정과 시각을 지지해주길 원한다. 그러나 다양한 구성원으로 인해 숱하게 의견이 갈리는 사회에서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길이 화합이 아닌 분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 그저 두려울 뿐이다.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CNN ‘GPS’ 호스트>
∗예일대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파리드 자카리아 박사는 국제정치외교 전문가로 워싱턴포스트의 유명 칼럼니스트이자 CNN의 정치외교분석 진행자다. 국제정세와 외교부문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석가이자 석학으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