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에 있지만 동양보다 더 동양적인 면을 갖고 있다고도 볼 수 있는 매력적인 도시 샌프란시스코를 나는 내 집으로 삼기로 했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성장했고, 한국과 미국에서 서양음악을 전공한 나는 이곳에서 작곡가로 활동하며 살아보고 싶었다.
태어나보니 이미 내 집이 서울에 있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나의 ‘선택’이었다. 집은 house이며 home인데, house는 나를 신체적으로 안전하게 지켜주는 곳이고 home은 나를 정신적으로 정서적으로 건강하게 지켜 주는 곳이다.
서울에서 나는 부모님 소유의 house에서 부모님이 가꾸는 home의 식구가 되어 마음 편히 살았다. 내 생애의 첫 기억은 입원해있는 어머니를 매일 방문하던 일인데, 아직 어려서 아프다는 것의 의미조차 몰랐기 때문에 슬펐던 기억은 없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내가 나의 집을 스스로 만들어왔다. 어렸을 적에 풀던 문제집 맨 뒷장에 정답이 적혀있었던 것처럼 인생의 정답을 적은 페이지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매일 아침 줄이 그어진 오선지 앞에 앉아 나는 정답을 찾는다. 만약에 오선공책 맨 뒷장에 정답이 이미 적혀져있고 내가 하는 일이 겨우 정답을 맞혀야하는 것이라면 나는 아마 오래 전에 작품쓰기를 그만두었을 것 같다. ‘스스로’ ‘계속’ ‘매일’ 정답을 만들어야하는 일상은 고달프다. 소동파(蘇東坡)가 한 폭의 산수화를 보고 ‘가녀린 대나무는 은둔자 같고. 소박한 꽃은 소녀 같네. 참새는 나뭇가지 위에 비스듬히 앉아있고. 한바탕 쏟아지는 빗방울은 꽃잎에 흩뿌려지고. 날아가려는 새가 날개를 펴니 나뭇잎이 흔들리네. 꿀을 모으는 벌들은 꿀에 빠져 황홀해.’(번역 나효신)라는 시를 썼는데, ‘꿀을 모으는 벌들이 꿀에 빠져 황홀’한 것처럼 작품을 쓰는 즐거움이 고달픈 일상을 넉넉히 덮어주기 때문에 작곡을 계속 할 수 있는 듯하다.
인생도 그렇지 않은가. 정답을 모아 서랍에 넣어두고 이따금씩 열어서 볼 수 있는 것이 인생이라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나만의 정답을 찾으며 완성시켜가는 나의 삶! 밖에 나가서 친절한 사람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집’ 즉 내 ‘가정’에서 내 식구(들)에게 친절하면 좋겠다. 그런 삶이면 좋겠다. 식구가 많으면 많은 대로, 혼자 산다면 내가 나 스스로에게 친절한 일상…. 그래서 집으로 오는 맘과 발걸음은 늘 편하고 가벼우면 좋겠다. 나는 이곳에 살며 나의 샌프란시스코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아간다.
그리고 매일 오늘 하루 동안 할 일에 대한 꿈을 꾼다. 일찍이 박경리 선생님도 ‘꿈꾸는 자가 창조한다!’고 했다.
<나효신/작곡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