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세인 나는 제법 나이 든 사람처럼 행세하다가도 나보다 자그마치 13살이나 많은 고향선배 이박사 앞에서는 쪽도 못쓴다. 세브란스 의대를 졸업하고 1960년대 말 미국에 온 이박사는 50년 넘게 미국 소아과 의사로 일하다가 지난달 은퇴했다. 선배 부인도 의사인데 연세의대 동문회에서 만나 부부 인연을 맺고 지금까지 50년 가까이 해로하면서 3남매를 두고 그 중 둘은 의사로, 하나는 성공한 사업가로 키워냈다.
이박사는 골프를 아주 좋아하나 주변에 같이 골프를 칠만한 친구가 별로 없다. 같은 연배의 친구들은 거의 별세했거나 몸이 아파 함께 골프를 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13년 연하의 고향 후배인 나를 만나 함께 골프를 치게 되었다. 모처럼 생긴 연하의 골프친구를 이박사는 끔찍이도 챙겨준다. 골프장에 나올 때마다 상추며 풋고추며 오이 등 텃밭에서 갓 따온 싱싱한 야채들을 한봉다리씩 얼음에 재워 갖고 나와 ‘먹어봐’ 하고 내게 준다.
이박사는 골프장에만 오면 뭐가 그리 좋은지 ‘오라이-All right’를 연발한다. 골프 실력이 칠칠치 못한 내가 뒷 땅을 쳐서 공이 조금 밖에 못나갔는데도 ‘오라이’, 골프카트 뒤에 골프백 얹는 순서를 앉은 순서와 엇바꿔 실어도 ‘오라이’, 그린 건너편에 세워야할 카트를 뒤에 세워 많이 걷게 해도 ‘오라이’다. 이박사는 아마 병원에서도 환자나 간호사들에게 ‘오라이’를 연발할 것 같다.
이박사가 ‘오라이’ 하고 유쾌하게 소리칠 때는 옛날 서울에서 학교 다닐 때 여차장이 위태롭게 버스에 매달린 채 만원버스에 올라타려는 승객을 온몸으로 차안에 밀어 넣은 후 버스 옆구리를 탕탕 치며 ‘오라이’ 하고 소리치던 생각이 난다.
이박사는 눈이 어찌나 밝은지 돋보기도 쓰지 않고 신문을 읽는다. 러프에 떨어진 공을 찾지 못해 내가 두리번거리고 있으면 ‘저쪽 두번째 큰 나무 밑에 가보게’하여 가보면 틀림없이 공이 그곳에 있다.
한 가지 약이 오른 것은 이박사는 항상 나보다 공을 이삼십 야드는 더 멀리 보낸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얼마 전 이박사가 드디어 큰일을 냈다. 파4 홀에서 티샷을 친 후 120야드 전방에서 그린을 향하여 샷을 날렸는데 분명히 그린에 떨어진 것 같은 공이 안 보이는 것이 아닌가.
가서 보니 공은 둥지에 낳아놓은 새알처럼 홀컵 속에 예쁘게 들어있었다. 홀인원 못지않은 이글을 한 것이다. 너무 기쁜 나머지 이박사는 입버릇처럼 연발하던 ‘오라이’도 잊은 채 한동안 멍하니 서있다. 이번에는 내가 이박사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오라이! 오라이! 진짜 오라이!!!”
<채수호/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