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본격적인 미국이민이 시작되면서 한인들이 가장 많이 택한 업종 중 하나가 세탁업이다. 부지런하고 손재주 좋은 한인들은 그때까지 유대인과 이태리 이민자들이 운영하던 세탁소를 하나하나 접수하더니 어느새 10곳 중 7~8곳이 한인업소일 정도로 많아졌다.
옷을 한번 몸에 걸쳤다 하면 바로 세탁하는 미국인들의 습성 때문에 세탁소는 문만 열면 손님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 닷컴 기업의 출현으로 직장인들의 옷 입는 추세가 정장에서 캐주얼로 바뀌면서 드라이클리닝 물량도 대폭 줄어들었다. 게다가 2008년 리만브라더스 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는 소비심리를 크게 위축시켜 세탁업은 급속도로 사양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팬데믹까지 발생하자 그나마 근근히 유지해오던 많은 세탁소들이 문을 닫아야했다.
이런 가운데 조용히 세탁업계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는 업소가 있다. 뉴욕 맨해튼 중심가에 산재한 수십 개의 J’s Cleaners는 어느 매장에 가든지 균일하게 높은 품질의 세탁서비스를 제공한다. 수많은 세탁소 네트웍이 똑같은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 답은 생산공정의 자동화, 표준화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고객이 맡긴 모든 옷에는 가로 1.8센치 세로 4밀리의 아주 작은 바코드가 부착된다. 바코드는 옷의 솔기나 상표 뒷면 등 안 보이는 곳에 부착되는데 390도의 고열 압착기로 눌러 붙이기 때문에 한번 부착하면 옷의 수명이 다 할 때까지 떨어지지 않는다. 이 작은 바코드에는 고객의 성명, 주소, 전화번호는 물론 맡긴 옷의 종류, 색상, 재질, 상표 등 자세한 정보와 옷 사진까지 들어있다. 완성된 세탁물들은 배송차량에 실려 지점 세탁소의 컨베이어에 걸리는 순간 손님의 셀폰에는 맡긴 옷이 준비되었다는 문자메시지가 뜬다.
‘세탁업계의 맥도널드’ 또는 ‘세탁업계의 아마존’으로 불릴만한 이 기업의 사령탑에는 월남전에서 아버지를 여의고 아홉 살 때 큰아버지를 따라 아르헨티나로 이민 갔던 알버트 리씨가 있다. 아버지를 도와 실무를 총괄하는 조셉 리씨는 한국에서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유창한 한국말을 구사한다. 어쩌면 머지않아 AI를 탑재한 ‘제이스클리너스’의 배달 로봇이 옷을 들고 맨해튼을 활보하는 모습을 보게 될 지도 모른다.
<채수호/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