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 이이 선생은 삶에서 세 가지의 큰 불행이 있다고 했다. 세 가지 불행은 ‘소년등과’(젊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는 일), ‘중년상처’(중년에 처를 잃고 홀아비가 되는 일), ‘말년빈곤’(늙어서 돈마저 없어서 서러운 일)이다. 나머지 두가지 불행에는 쉽사리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소년등과’에는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다. 젊어서부터 성공가도를 달리는 건 누구나 원하는 일이 아닌가? 하지만 요즘 한국 연예계에서 일어나는 마약 스캔들을 지켜보다 보면 너무 이른 나이의 성공은 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동의하게 된다.
배우 이선균은 30대 초반부터 48세인 지금까지 차곡차곡 성공을 쟁취한 사람이다. 단역부터 주연까지 다양한 필모그래피를 쌓은 그는 32세의 나이로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에 출연해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지난 2019년에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출연해 전 세계에 얼굴을 알렸다. 영화 ‘기생충’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아카데미 시상식 오스카상을 거머쥐면서 그의 몸값 또한 상승 곡선을 그렸다.
배우 전혜진과 결혼해 두 아들을 낳고 단란한 가정까지 꾸린 그는 명예, 부 등 모든 걸 가진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배우 이선균은 최근 마약 스캔들에 연루되면서 평소 쌓아온 긍정적인 배우 이미지를 한 번에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그는 멤버십 회원제 유흥업소에서 여러 차례 마약을 투약한 혐의로 입건됐다.
이처럼 왜 모든 걸 가진 듯한 사람이 스스로를 파멸로 이끄는 경우가 종종 발생할까? 아무래도 준비가 덜 된 미숙한 상태인 인생의 초반부에 성공을 하게 되면 자만과 방탕에 빠지기 쉽다. 성공을 담을 만한 큼지막한 그릇을 갖추지 못한 채 운 좋게 성공을 얻으면, 그 성공은 그릇 밖으로 넘쳐 흐르기 마련이다. 오히려 초년에 어려움을 겪은 이들이야 말로 축복받은 인생을 살고 있는지 모른다. 그들의 인생은 단단한 마음가짐과 다사다난한 경험들을 발판삼아 올라갈 일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유명한 미국의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우가 1943년 발표한 ‘매슬로우의 인간 욕구 5단계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누구나 다섯 가지 욕구를 가지고 태어나는데 이들 욕구에는 우선순위가 있어 단계가 구분된다. 사람은 가장 기본적인 욕구부터 경험하기 시작하고, 하위 단계의 욕구가 어느 정도 충족되면 상위 계층의 욕구가 나타난다.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애정과 소속의 욕구, 존경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로 나아가는 5단계의 욕구는 피라미드 구조를 이루고 있다.
피라미드의 최상부에 위치한 자아실현의 욕구는 개인의 타고난 능력과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려는 욕구로 매슬로는 성장을 향한 긍정 동기의 발현이라는 점에서 자아 실현의 욕구를 최상의 욕구로 여겼다. 다른 단계의 욕구와는 달리 자아 실현의 욕구는 충족될 수록 더욱 증대되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말년에 접어들면서 매슬로우는 사람이 자아실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인정하고, 이 단계를 넘어선 ‘자기초월의 욕구’가 존재한다고 확신했다. 자기초월의 욕구란 자신의 완성을 넘어 타인과 세계에 기여하고자 하는 욕구를 의미한다. 매슬로우는 자아실현을 완성한 사람들은 자신을 초월하는 가치에 의해 동기를 부여 받는 경향이 있고, 자신을 초월해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경지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영앤리치’(young and rich)를 꿈꾼다면, 모든 걸 이루고 난 그 후의 인생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 돈이 많고 유명세를 얻은 후 인생의 허무를 논하며 마약, 술 등에 중독되면 노년은 불구덩이에 빠진 듯 비참해 진다. 17세기 스페인의 철학자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책 ‘아주 세속적인 지혜’에서 “모든 것을 소유하면 머지않아 환멸과 불만에 빠지게 된다”며 “몸은 숨을 쉬어야 하고, 영혼은 열망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아실현의 욕구를 이뤘다면, 그 다음 단계인 ‘자기초월의 욕구’를 추구해보자. 공공의 선이야 말로 사람의 영혼이 죽을 때까지 열망해야 할 최상의 욕구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자기초월의 방식으로.
<석인희 LA미주본사 사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