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한 에세이에서 6.25전쟁때 피난을 못가 골방에 숨어 지내면서 세계명작전집을 죽으라고 보면서 공포와 긴장의 시간을 버텨냈다는 내용을 읽었었다. 당시에 읽은 세계명작이 뭐가 있을까 하여 찾아보니 1937~1940년에 박문서관에서 출판된 현대걸작 장편소설 전집과 걸작장편소설 전집, 조광사에서 세계명작장편전집이 출간된 기록이 나온다.
글쓴이는 톨스토이의 부활, 안나 카레니나, 고리키의 어머니,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셰익스피어의 햄릿, 로미오와 줄리엣,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 괴테의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를 읽으면서 전쟁의 참화 속에 살아남았을까.
살아있어도 전쟁에의 상처와 기억은 평생 트라우마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 실제로 작가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문학의 세계에 빠지면 고통, 상처, 아픔 등 모든 희로애락의 감정을 초월하며 위로받는다고 한다.
지난 10월24일부터 26일까지 사흘간 한국 파주에서 ‘DMZ 평화문화축전’이 개최되었다. 이곳에 온 노벨문학상(2008년) 작가 르 클레지오는 이렇게 말했다.
“2차 대전 직후 암울했던 유년 시절에 희망을 잃지 않도록 해준 것은 외할머니가 매일 매일 해준 새로운 이야기들이었다. 나는 예술과 문학이 문화 제국주의와 전쟁의 해악에 대한 해독제라고 믿고 있다.” 그의 소설로 ‘황금 물고기’, ‘사막’, ‘타오르는 마음’ 등이 있다.
또 함께 방한한 노벨문학상(2015년)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대표작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체르노빌의 목소리’ 등이 있다. 작가 역시 문학은 전쟁을 겪은 아이들이 짐승이 아닌, 사람이 되게 지켜주는 버팀목이 돼야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터에 있는 이들은 이 난관과 불안감을 어떻게 헤쳐 나가고 있을까. 가족이 하마스 인질로 잡혀간 후 걱정으로 밤을 지새우고 수시로 공습경보가 울리는 곳에서 사는 이스라엘인들, 계속된 폭격으로 집을 잃고 갈 곳이 없어 유엔개발기구 제공 텐트에서 생활하는 팔레스타인인들, 모두 공포와 두려움, 불안 증상이 극심할 것이다.
이스라엘 문학의 거장 아모르 무즈는 부모세대의 홀로코스트, 자신의 경험을 글로 쓴다. 소설 ‘블랙박스’에서 한 때 부부였던 알렉스와 일라나, 아들 보아즈 등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가족의 의미, 정체성을 깨달아가는 모습을 그린다. 한국 박경리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적 공존을 주장하며 이스라엘의 양심으로 통한다.
또 2017년 맨부커 수상작 ‘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의 작가 다비드 그로스만은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우울증 걸린 어머니, 유대인의 거대한 고통의 역사와 아이들까지 전쟁훈련에 동원되는 이스라엘 사회의 안타까운 현실을 작품에 담았다.
또한, 진정한 팔레스타인 문학은 19세기 중반 이후 새로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1967년 6일 전쟁 이후 패전한 팔레스타인 사람의 의식 속에 확고한 저항과 혁명의 의지가 다져졌고 문학에도 저항정신이 담겼다. 여성작가 사하르 칼리파는 소설 ‘유산’에서 “어디서부터 이 재앙에 맞서 어떻게 물리쳐야 하나요? 섬광 같은 순간의 희망이라도 주는 곳은 세상천지 그 어느 조그마한 땅에서조차 찾을 수 없으니, 대체 우리가 뭘 잘못한 걸까요?” 한다. 이 소설에서 땅과 신체만이 아니라 내면까지 점령당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파주 DMZ 세계작가대회에 온 팔레스타인 소설가 아다니아 쉬블리의 장편 ‘사소한 일’은 최근 한국에서 번역 출판되었는데 이스라엘군의 베두인족 소녀 살해사건을 다루었다. 팔레스타인 난민, 민중의 삶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메시지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문학은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사랑과 용서가 있는 사회를 만드는 힘이 있다. 기독교, 힌두교, 이슬람교, 유대교 등등 다른 종교의 기념일과 교리를 존중하고 전쟁의 참극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게, 더 이상의 희생을 줄이는데 힘을 보태야 한다. 비록 문학이 전쟁을 막을 수는 없지만 전쟁의 폐해를 희석시키는 해독제가 되어야만 한다.
<민병임 뉴욕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