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프리웨이에서 추돌사고를 당했다. 아침 러시아워의 ‘범퍼-투-범퍼’ 상황이어서 충격은 미미했다. 내 차를 들이박은 사람의 운전면허증을 보니 나보다 꼭 40살이 적었다. 내가 면허증을 땄을 때 태어나지도 않은 사람이다. 갓길에서 보험정보를 주고받는 두 사람을 지나가며 본 많은 운전자들은 십중팔구 “노인네가 잘못했겠지…”라고 생각했을 터이다.
권위를 자랑하는 랜드연구소의 분석이 그렇다. 65세 이상 노인운전자들의 사고유발 비율이 25~64세 성인들보다 16%나 높다. 미국 전체인구의 9%인 노인들이 사망자를 초래하는 전체 교통사고의 13%, 보행자를 치사시키는 충돌사고의 17%를 각각 유발시킨다. 교통사고를 일으킨 노인 운전자 본인들이 사망하는 비율도 25~64세 성인들보다 17배나 높다.
이달 초 플로리다에서 자전거를 타고 학교 앞 횡단보도를 건너던 고교생이 스쿨버스에 치여 숨졌다. 학교구역에서 스쿨버스가 사고를 낸 것보다도 그 스쿨버스 운전자가 팔순을 앞둔 할머니라는 점이 더 문제됐다. 이 할머니는 2년 전 76세 때 취업한 후 두 번이나 충돌사고를 냈지만 이틀간 정직처분을 한 번 받았을 뿐 계속해서 스쿨버스를 운전해왔다.
한국에서는 작년 12월 SUV를 운전하다가 ‘급발진 의심’ 충돌사고를 일으켜 동승한 12세 손자를 잃은 60대 할머니가 논란 끝에 지난주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같은 무렵 부산의 한 5층 주차건물에서 택시가 벽을 뚫고 추락해 70대 기사가 숨졌고, 80대 운전자가 과속으로 몰던 그랜저는 다중충돌사고를 낸 후 행인 2명을 덮쳐 숨지게 했다.
지난 2020년 미국에서 노인 7,500여명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부상당해 병원에 실려간 노인은 20여만 명에 달했다. 길에서 매일 노인 20여명이 죽고 540여명이 다친 셈이다. 한국에선 2021년 1,260여명이 사망하고 3만6,800여명이 다쳤다. 이들이 모두 운전자는 아니지만 노인들의 교통사고 사망률과 부상률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확연하게 높다.
미국의 65세 이상 운전자는 4,800여만명에 달한다(2020년 통계). 2000년 이후 20년간 68%나 증가했다. 요즘 운전대를 잡는 사람 5명중 1명 이상이 노인이다. 그 비율이 2025년에는 4명 중 1명꼴로 늘어난다고 랜드연구소는 분석했다. ‘인생 100세 시대’답게 고령 운전자는 그 후로도 계속 늘어날 터이고 이들로 인한 사고도, 인명피해도 늘어날 터이다.
고령운전자 이슈가 4년 전 지구촌에 회자됐다. 당시 97세였던 에든버러 공(엘리자베스 2세 여왕 남편)이 랜드로버를 몰고 가다가 마주오던 기아 미니밴을 들이받았다. 차가 뒤집혔지만 그는 멀쩡했다. 미니밴의 젊은 여성 운전자와 아기도 경상만 입었다. 며칠 후 에든버러 공은 새로 뽑은 랜드로버를 안전벨트를 매지 않고 운전하다가 경찰의 경고를 받았다.
백수(99세)를 누린 귀족 에든버러 공에겐 운전이 취미였다. 나를 포함한 보통 노인운전자들에겐 운전이 생활수단이다. 세계최고의 전철 시스템을 자랑하는 한국과 달리 미국의 대중교통은 후진국 수준이다. 뜸하고 느린 건 차치하고 불결하고 위험하다. 동양인들이 인종차별 폭행을 당하기도 한다. LA와 시애틀에서 반세기를 사는 동안 전철을 타 본적이 없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운전하는 게 예전 같지 않다. 시력과 청력이 떨어진 탓에 운전 중 주변 상황에 잽싸게 대응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한다. 프리웨이에서 내려야할 램프를 놓치기 일쑤고 길거리 주차도 단번에 못 끝내고 낑낑댄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한국의 한 조사에 따르면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 중 66%가 운전하는데 어려움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면허증 반납 의향을 밝힌 노인비율도 67%로 비슷했다. 이들이 꼽은 적절한 반납 나이는 80.64세였다. 내가 딱 그 나이인데 나는 운전대를 놓을 생각이 전혀 없다. 옆집의 젊은 부부로부터 공항(버뱅크)에 데려다 달라는 부탁을 종종 받는다. 애든버러 공은 팔팔하게 운전하면서 99세에 죽었다. ‘팔팔운전 구구사’가 모든 고령운전자들의 야무진 꿈일 터이다.
<윤여춘 전 시애틀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