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정기적으로 약 타러 가는 동네 슈퍼마켓 안의 약국에 들렸다. 약사에게 문의했다.
“백신 맞을 수 있나요?”
“어떤 백신 말씀이시죠?”
“얼마 전에 새로 나온 코로나 백신, 독감, 그리고 또 RSV인가 뭔가 하는 거요. 예약 안 했는데 지금 가능한가요?”
“네”
“셋 다 한꺼번에 맞는다고 혹시 죽지는 않겠죠?”
“죽지 않으세요. 좋지 않으시면 타이레놀이나 애드빌 드시면 돼요”
친절한 아시아계 여 약사는 어느 손 잡이인지를 묻고는 주로 쓰는 오른팔 쪽에 코로나와 독감 백신을, 왼쪽 팔뚝에는 RSV 백신 한 방을 놓았다. 처음 맞아 보는 RSV가 코로나나 독감 보다 (후유증이) 더 센 놈인가 짐작하게 된다. 접종 날짜를 기록 받으려고 지니고 있던 코로나 접종 카드를 내밀었더니 이런 카드는 이제 필요 없다고 한다. 카드에 적힌 마지막 접종 날짜도 1년이 더 지났다. 이 정도면 이미 백신 효과도 없다.
신문에 나오는 백신 이야기는 결론이 정해져 있는 것 아니냐 고 한다. 맞는 말씀이다. 결론은 늘 “백신 맞으세요” 일 테니까. 하지만 접종은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 사항, 누구도 강제할 수 없다. 되도록 여러 정보를 두루 접한 후 본인의 건강상태 등을 고려해 예방주사 접종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올 겨울에는 호흡기 질환 삼총사에 대비해야 하는 것으로 이야기된다. 잘못될 경우 삼중고(tripledemic)를 겪을 수 있다고 한다. 종전의 코로나와 독감(플루)에다 급성 호흡기 감염증인 RSV가 추가됐다. 이 세 가지 호흡기 전염병들은 증상이 비슷비슷해 구별이 어렵다. 아프긴 한데 무엇 때문인지 구별이 안되는 것이다. 테스트 한 번으로 담박 원인을 감지할 수 있는 검사 방법이 연구되고 있지만 아직은 아니다.
올들어 유독 자주 들리는 RSV는 한국어로 ‘호흡기 세포융합 바이러스’라고 하는데, 신종은 아니다. 노인과 만성 질환자, 특히 어린 아이들이 조심해야 한다. 쉽게 폐렴으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감기처럼 왔다 폐렴까지 간다’는 말이 이 바이러스의 특징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요즘 폐렴이 많대”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면 RSV가 원인일 수 있다.
RSV는 올해 처음 백신이 개발됐다. 지금껏 감기처럼 예방약 없는 일반 호흡기 질환이었으나 이제 예방이 가능해진 것이다. 미국에서는 연방식품의약청(FDA)에 의해 지난 5월 승인됐다. 60세이상 노인 등과 함께 특히 임신 32~36주 차 임산부의 접종도 권유한 연방 질병통제 예방센터(CDC) 지침이 눈에 띈다. 출산을 앞둔 산모에게 9월~1월에 백신 접종을 허용한 것은 RSV 유행 시기에 혹시 산모에 의해 신생아가 RSV에 감염되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RSV가 그만큼 영유아에게 위협적인 호흡기 질환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코로나 백신은 “전에 그렇게 여러 번 맞았는데 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CDC는 지난 9월12일 전에 백신을 맞았다면 이번에 새로 나온 것을 맞도록 권장한다. 전에 맞았던 백신으로는 지금 우세종인 코로나 신종 변이에 대처할 수 없다. 모더나나 화이자 중에 골라 맞을 수 있다.
백신을 맞고자 해도 처한 건강상태로는 맞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의심되면 먼저 담당 의사와 상의해야 한다. 백신은 맞은 지 2주쯤 뒤부터 효력이 생기기 때문에 독감 유행 시기 등을 고려하면 지금은 백신 접종하기에 가장 좋은 때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