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가파른 언덕 꼭대기에 있어서 걸어서 올라가면 숨이 차고 걸어서 내려가면 무릎이 아프다. 수십 년 전에 내가 이 동네로 이사 왔을 적에는 숨도 차지 않았고 무릎도 아프지 않았지만, 언덕은 그대로인데 그 같은 언덕을 걷는 나는 변했다.
샌프란시스코가 유명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언덕이 많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자동차를 타고 언덕 꼭대기에 있는 신호등이나 멈춤 표지판 앞에 멈춰있으면 혹시 자동차가 흘러내리는 것은 아닐까 싶어서 조마조마하다.
길을 만들기에 경사가 너무 심한 곳에는 자연스럽게 계단이 생기는데, 그래서 샌프란시스코에 계단이 많다. 그 중에서도 라이언길 계단(Lyon Street Steps)은 매우 유명하다. 계단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면 그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나는 아래에서 시작하지 않고 꼭대기에서 내려가기를 먼저 하는데, 그러면 나중에 계단을 올라올 적에 올라간 계단이나 산은 반드시 다시 내려와야 한다는 부담이 없어서 마음이 가볍다. 아름다운 경치도 보고 다리 운동도 되고 마음까지 가벼우니 더 바랄 것이 없다.
계단을 두 개씩 건너뛰어 올라가던 시절에는 계단손잡이에 의지하지 않았다. 나는 계단손잡이는 그저 예쁜 색으로 칠한 장식품인 줄 알았다. 그래서 우리 집 계단손잡이는 빨간색으로 칠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나는 그 예쁘고 빨간 손잡이를 꼭 붙잡고 계단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전라도 여수에 있는 향일암(向日庵) 즉 ‘해를 향한 암자’에 가려면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가다가 잠시 멈추고 이렇게 계단이 많은 줄 진작 알았더라면 오지 말 것을…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계단이 많다. 그러나 꼭대기까지 올라가보면 매우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며 올라오길 잘했다고 마음을 또 바꾸게 된다.
그런데 산을 꼭대기까지 올라가 그곳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바다이다. 산에는 산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올라가는데 가서 보면 바다가 보이고 그곳에서 해가 뜨는 것을 보는 것이다. 미국에 와서 오래 살았지만 이따금씩 한국의 명소에 가본다. 고국의 아름다운 모습을, 아름다운 소리를, 아름다운 문화를 잊지 않기 위해서 간다. 좋은 것을 이미 가진 나는 내 것이 최고라고 큰 소리로 주장할 필요가 없다. 네 것도 좋고 내 것도 좋다며, 우리는 언덕과 계단이 많은 이 도시를 ‘집’이라고 부르며 이웃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나효신 작곡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