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마당에 열린 대추는 내 꺼가 아니다. 얄미운 다람쥐 몫이다. 그 전에 정성껏 심은 복숭아나무, 오렌지나무의 과실도 다람쥐 군단의 침략을 받았다. ‘오늘 내일 익으려나?’ 기다리던 내가 미처 맛도 보기 전, 다람쥐들이 제멋대로 드나들며 알맞게 익은 열매만 골라 전멸시켰다.
누가 다람쥐를 귀엽다고 했나. 나도 첨부터 걔네들을 미워한 건 아니다. 그날따라 나무 밑 벤치에 앉아있는 나를 못 봤는지 다람쥐 두 마리가 시시덕대며 대추나무로 접근, 그동안 눈여겨 보아둔 가장 탐스런 열매에 손을 뻗치는 게 아닌가. 분기탱천 벌떡 일어나 두 팔을 휘저으며 냅다 소리를 질렀다. “야아! 나쁜 놈들아!” 난 그때 분명히 봤다. 징그런 꼬랑지를 치켜세운 다람쥐 두 놈이 흰 이빨을 드러내며 킬킬 웃는 모습을! 그러더니 순식간에 잘 생긴 대추알을 움켜쥐곤 나뭇가지를 타고 올라 내 눈을 빤히 마주보며 오두둑오두둑… 하더니 먹고 남은 씨를 내 쪽으로 뱉어냈다. “?!”
기어가는 동물은 다 밉다. 무섭다.
쥐, 바퀴벌레는 물론이려니와 기어가는 개미, 거미도 무섭고 남편이 친구들과 낚시를 간다며 준비한 지렁이 미끼 깡통을 첨 봤을 땐 거의 실신했다. 값비싼 활어집 흰 접시 위를 기어가던 토막 난 낙지도 무섭고, 그리피스 공원 테니스코트에서 스스스스 하며 고개 들고 서있던 방울뱀도 기절, 주변 환경에 따라 몸 색깔을 변화시킨대서 더 징그러운 도마뱀, 구더기처럼 머리 없는 흐늘흐늘 무척추동물, 상상만 해도 소름이다.
그중에서도 마당에 사는 도마뱀이 집안으로 들어온다는 건 열대지방 얘긴 줄만 알았다. 캘리포니아답지 않게 무더웠던 이번 여름, 우리 집에서 일어난 납량특집 실화다.
하루는 이층 구석방에서 옷장 정리를 하고 있는데 아래층에서 남편의 공포에 찬 단말마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오오오! 빨리이이이!” 너무 놀라 들고 있던 옷가지를 내동댕이치고 단숨에 구르듯 아래층으로 내려와 보니… 키친 냉장고 바닥 틈새에 손가락 사이즈의 도마뱀 한 마리, 그 앞 약간 떨어진 거리에 남편. 둘이 서로 노려보며 대치 중인데 이 커다란 성인 남자의 손에 들린 무기는 하필 가느다란 핑크색 파리채가 아닌가. 누구라도 먼저 움직이면 상대가 반격할까봐 그냥 그렇게 팽팽한 대치국면으로 초침은 째깍째깍 흘러갔고, 보다 못한 내가 손에 닿는 대로 커다란 바가지에 튀김옷 만들려고 준비한 밀가루 묽은 반죽 통을 냅다 도마뱀 위에 거꾸로 덮어씌우는데 성공! 허연 밀가루 물반죽을 온몸에 뒤집어쓴 도마뱀은 익사인지 질식사인지 마침내 명이 다한 채 나중에 치워졌고 분홍색 파리채 사나이와 나는 한동안 집안에서도 신발을 신은 채 발뒤꿈치로 걸어 다녔다.
정신의학에서는 이런 것을 불안 장애의 하나인 특정공포증(Specific Phobia) 범주 안에서 설명한다. 곤충, 거미, 개 등 동물 공포, 높은 데나 막힌 데서 일어나는 상황 공포, 피나는 것이나 상처, 시체 등 혈액-주사-손상형 공포, 천둥 번개 같은 자연현상 공포 등, 이것들이 비현실적이고 과도한 반응이라는 걸 환자 본인도 안다. 심장이 급격하게 뛰기도 하고 혈압이 오르거나 내리면서 실신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이는 게 특징이다.
기어가는 동물은 다 무섭다고 했더니 친한 남자 동료 하나가 “아기 안 낳고 안 키웠어요?” 하고 비웃는다.
“아기가 기어가면 무섭겠네요? 우린 군대 가서 다 기었다구요. 낮은 포복, 높은 포복 아십니까? 한 손 한 다리로 기는 응용 포복, 철조망 통과할 땐 드러누워 포복인데, 흠…… 기어가는 동물은 다 무섭다니 이를 어쩌죠?” 그렇다면 다시 고쳐 말할 수 있다. 난 기어가는 네 발 이상 동물이 정말 무섭다.
<김케이 임상심리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