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에서 미국으로 여행을 간다 하면 “위험하지 않아?”라는 질문부터 따라온다. 전세계인의 선망 국가이던 미국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나 싶은 대목인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부터 미국의 이미지는 사뭇 달라지기 시작했다. 특히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LA 등을 포함한 미국 서부 도시들은 팬데믹을 기점으로 치안이 무너졌다. 인플레이션, 렌트비 급등, 마약 남용, 노숙자 문제 등 각종 사회 문제들이 뒤엉켜 서부 지역의 치안을 망가뜨렸다.
먼저 캘리포니아주 북쪽에 위치한 샌프란시스코는 가장 빠르게 침체기를 맞이한 도시다.
글로벌 IT 기업의 중심지인 샌프란시스코는 팬데믹 이전만 하더라도 매년 많은 여행객들이 몰리는 분주한 곳이었다.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If you’re going to San Francisco/Be sure to wear some flowers in your hair)라는 노래(스콧 맥킨지의 ‘샌프란시스코’) 가사가 있을 만큼 본래 샌프란시스코는 자유가 넘치고 진보적인 예술의 도시였다. 샌프란시스코는 사회 통념을 부정하고 개성을 중시하는 히피들의 문화가 시작된 곳으로, 특유의 여유로움과 낭만적인 분위기로 인해 ‘서부의 파리’로 불리기도 했다.
그런데 팬데믹 이후 재택근무자가 늘어나고 도시의 유동인구가 줄면서, 기존에도 심각했던 도시의 노숙자 문제가 더욱 극심해졌다. 마약상들은 인도 한복판에서 보란듯이 마약을 판매하고, 주택가 한복판에서 총격전이 벌어지는가 하면, 노숙자들의 노상방뇨는 어느덧 도시의 일상적인 모습이 됐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도심 공동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주민들이 체감하는 범죄에 대한 두려움이 증폭됐다. 최근 이 도시의 공실률은 사상 최고인 30%를 찍으며 뉴욕(16%)의 두 배에 달했다.
한때 천사들의 도시로 불리며 누구나 가고 싶은 꿈의 여행지로 꼽혀왔던 LA 또한 더 이상 ‘라라랜드’라는 별칭이 무색해질 만큼 위험한 지역으로 변했다. 오늘날 LA 곳곳에서는 강도, 마약, 폭행 등의 범죄 사건이 연일 발생하며 ‘안전한 공공장소’들이 자취를 감췄다. 이제 주민들은 그 어디를 가더라도 ‘안전하다’는 감각 대신 ‘언제든 범죄가 일어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느껴야만 하는 안타까운 상황에 처했다.
캘리포니아주의 대표 도시인 샌프란시스코와 LA의 치안 문제가 이 지경까지 치달은 배경의 중심에는 진보의 아이콘 조지 개스콘 검사장이 있다.
그는 지난 2011년부터 2019년까지 샌프란시스코 검사장을 역임했고, 2020년 12월부터 LA 카운티 검사장으로 임기를 시작했다. 개혁주의자로 알려진 개스콘 검사장은 취임 직후부터 ▲갱 단원 등 중범죄자들에 대한 가중처벌 기소 중단 ▲사형제 폐지 ▲범죄자 형량 재심사 ▲미성년자 범죄 시 성인과 동등한 처벌 금지 등 파격적인 검찰개혁을 추진해왔다.
게다가 개스콘 검사장은 팬데믹 동안 구치소 내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임시 시행했던 무보석금 석방 제도인 ‘제로 베일(Zero bail)’ 정책을 올해 5월 부활시켰다. ‘제로 베일’은 체포된 범죄자들을 다시 거리에 풀어주면서 LA 범죄 사건 급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스티브 쿨리 LA 카운티 전 검사장은 “강도 행각을 벌여 체포되고도 무보석금으로 석방된다면 누가 범죄를 저지르지 않겠느냐”며 ‘제로 베일’ 정책을 강도높게 비난한 바 있다.
손만 가져다 대면 모든 것을 금으로 만드는 미다스 왕처럼 개스콘 검사장이 손대는 모든 도시들은 무법지대가 되고 있다. LA가 다시 라라랜드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내년 치러질 선거만이 유일한 희망으로 보인다. 2024년 LA 카운티 검사장 선거에 출마를 선언하는 후보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며 벌써부터 선거 열기가 뜨거운 이유다. 검사장 후보들은 현 검사장인 조지 개스콘의 재선을 막고 LA의 치안을 안정화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과연 그 누가 차기 검사장으로서 위기에 처한 LA를 구할 수 있을 것인가. 주민들은 당색을 떠나 후보 개인의 자질과 정책에 기반해 투표를 해야만 한다. LA는 그 누구도 아닌 주민들 한 명, 한 명의 손으로 지켜낼 수 있다.
<석인희 LA미주본사 사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