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80대 골퍼가 젊은 고수와 한 카트를 타고 라운딩 했다. 노인은 같잖게 대하는 고수에게 우습게보지 말라며 “공이 모래구덩이에 빠질 때 말고는 전혀 문제없다”고 일갈했다. 실제로 노인의 점수는 젊은이와 막상막하였다. 이윽고 공이 샌드트랩에 빠졌지만 노인은 원 샷으로 홀컵에 꽂아넣었다. 놀란 젊은이에게 노인은 팔을 내뻗치며 “나 좀 밖으로 꺼내달라”고 부탁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옥토제너리언’(80대 연령층)들의 유머이다. 팔 힘은 지금도 젊은이 못지않지만 다리가 예전만 못함을 은유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팔순기념 문신을 하려면 장미꽃을 그려 넣지 말고 이름과 주소를 써넣으라”는 조크도 있다. 80대 노인이 이웃에게 “기억력이 자꾸 흐려진다”고 하소연하자 이웃이 “맞아요. 어제도 그 말씀하셨어요”라고 대꾸했다는 농담도 있다.
아마도 이런 유머들은 오래 전 옥토제너리언들이 드물었던 시절에 나왔음 직하다. 요즘은 ‘노너제너리언’(90대 연령층)은 물론 ‘센테네어리언’(100세 이상)들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소위 ‘인생 100세 시대’가 도래한 마당에 요즘 팔순은 예전 환갑이나 진배없다. 그렇긴 해도 옥토제너리언이 된지 반년이 넘은 나도 이제 다리가 휘둘리고 기억력이 깜빡거림을 숨길 수 없다.
조금 전에도 기억력이 나빠진 걸 실감했다. 원래 오늘 칼럼은 사흘 후로 다가온 추석얘기를 쓸 참이었다. 나무 잎들이 울긋불긋해지며 중추가절 무드를 자아내고 있다. 사흘 전에 지나간 추분 얘기부터 쓰면서 추석달이 유난히 큰 이유를 구글에서 찾아보다가 뜨악했다. 언젠가 읽어본 자료였다. 그제야 6년 전 시애틀 지사에서 근무할 때 추석얘기를 썼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와 달리 체력이 넘치는 옥토제너리언 명사들이 많다. 샌드트랩의 공을 1타로 홀컵에 넣는 정도가 아니다. 나와 동갑인 로버트 드니로는 올해 7번째 딸을 낳았고 알 파치노(83)는 세 번째 아들을 낳았다. 믹 재거(80)도 8번째 아들을 73세 때 낳았다. 명사 셰프인 마사 스튜어트(81)는 올해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잡지의 수영복 특집 표지모델로 떴다.
세계최고 권력자인 조 바이든 대통령은 81세다. 내년에 재선되면 망백(望百,91세) 가까이 집권한다. 그에게 설욕하겠다며 설치는 도널드 트럼프(77)가 만에 하나 당선되면 그도 두 번째 임기 중에 옥토제너리언이 된다. 워싱턴 정가를 주름잡았던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과 코로나 팬데믹 퇴치의 선봉장으로 스타가 된 앤서니 파우치 국립 앨러지·감염병 연구소장은 83세다.
팔팔한 노너제너리언들도 많다. 존 윌리엄스(작곡가)가 91세이고, 루퍼트 머독(언론재벌), 로버트 듀발(배우), 윌리엄 섀트너(배우), 윌리 메이스(홈런 왕), 댄 래더(뉴스 앵커)가 92세 동갑들이다.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진 해크먼, 조지 소로스(자선사업가), 워렌 버핏(억만장자 투자가)은 93세 동갑들이고, 딕 반다이크(배우/가수)는 97세이다.
한국의 대표적 명사 센테네리언은 김형석(103)교수다. 미국엔 올해 100세가 된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있다. 그도 김 교수처럼 정정해서 최근 ‘AI 시대와 인류의 미래’라는 책을 출간했다. 최고령 미국인 에디 세카렐리 할머니는 오늘 현재 115세 233일이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팔팔하진 않지만 ‘구구팔팔이삼사’를 거의 이뤘다. 나흘 후 10월1일 백수(白壽, 99세)가 된다. 7개월 전에 고질이었던 피부암 치료를 스스로 포기고 퇴원한 후 하루하루가 기적 같은 연명이었다. 한 측근이 “생일날 뵐 수 없을지도 모르니 미리 축하드린다”고 말하자 카터는 “99살까지야 살겠지만 그게 뭐 그리 대수냐?”며 응수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내가 80세 생일에 받은 카드 중 “나이는 숫자일 뿐입니다. 그 숫자가 동그라미 세 개네요. 계속 둥글고 충만한 삶 이어가시기를...” “세상에서 가장 젊은 옥토제너리언이 되셨음을 축하합니다. 10년 후도 오늘 같기를...” 등의 메시지가 있었다. 기분 상 10년은 더 살 것 같은데 20년은 장담 못하겠다. 구구팔팔이삼사를 누리되 카터처럼 생을 달관할 수 있게 되기를 염원할 뿐이다.
<윤여춘 전 시애틀 고문>